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범용기 제6권] (1634) 고난의 도전과 수난자의 응전

[범용기 제6권] (1634) 고난의 도전과 수난자의 응전[누가복음 6:20-26]

인간은 몸을 갖고 삽니다. 몸은 먹고 마시고 입고 쉬고 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고 잠못자고 하면 몸이 괴롭습니다. 몸이 괴롭다는 것은 그 인간이 괴롭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몸을 가진 사람은 잘 먹고 잘 입고 잘 쉬고 잘 놀기를 원합니다. 몸이 괴롭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나면서부터 기성품으로 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성품의 알몸으로 불쑥 밀려나는 것입니다.

가능성은 위대해도 현실에는 무력합니다. 소나 말 새끼는 낳자 마자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애기는 발버둥치며 우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소나 말은 배에서부터 털옷을 입고 나오지만, 인간은 벌거숭이로 팽개쳐진 신세입니다. 자력생존이란 점에 있어서는 무능력한 존재입니다. 어머니 사랑의 덕택으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눕히며…” 키워진 것입니다. 사랑을 먹고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자라야 하겠습니다. 자란다는 것은 자립 자활을 목표삼은 생명의 행진입니다. 자기 생명은 자기가 돌봐야 합니다. 그러려면 갓난애처럼 무소유로 지낼 수는 없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쉴 고장, 직업, 자녀부양과 교육비용 등등을 가능케 할 수유가 있어야 합니다. 물건을 내게 갖다 붙여 둬야 합니다.

이건 거의 인간의 본능이랄 수 있겠습니다.

두살 밖에 안 되는 어린애가 장난감을 부둥켜 안고 “내꺼다” 하면서 형들과 싸우고 맞고 울고 합니다. 어거스틴은 이것을 인간의 “원죄”(Original Sin)라고 했습니다만, “죄”라기보다도 “자기보호”의 본능이란 것이 더 가까운 설명일 것입니다.

무엇이든 소용될 것을 자기 권한 안에 간직해 놓아야 살 수 있다는 생존 의욕의 당연한 발로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주의가 되고 이기주의가 되고 자본주의 제도가 되고, 억만장자가 생겨나고 무일푼의 가난뱅이도 생겨났습니다. 못가진 가난뱅이는 소유욕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부자보다도 더 절실하게 뭔가 갖고 싶어할지 모릅니다. 못가진 자본주의라 할까요?

이렇게 부자, 빈자를 막론하고 재산소유욕은 불현 듯 치솟고 있지만 그 소원을 성취한 인간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 소유자도 그렇게 갖고 난 다음에 보면, 거기에 또 다른 종류의 불안과 불만족과 고민과 불행이 생깁니다. 인간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호의로 대하는 사람도 자기 재산을 보고 아첨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는 돈을 얻고 인간을 잃었습니다. 자기 자신도 돈 속에 매장된 “비인간”이 됩니다. 그는 거대한 저택 속에 외롭습니다. 누군가 인용한 예수의 말씀,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이 제물의 부요한 데서 부요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 가난하고 병들고 눌리고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서민층 인간들을 물론 고통을 불치병 같이 몸에 지니고 다니는 절대다수의 인간들이지만, 그들을 누르고 괴롭히고 짜내고 짓밟는 지배층 인간들도 그만큼 불안하고 초조하고 고통스럽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고통”의 문제는 한 옛날부터 인간이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인생문제로 다루어졌던 것입니다.

구약성서의 “욥기”는 이 고통의 문제를 주제로 한 “드라마”였고 예수님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 고통의 문제를 응시하며 한 걸음 한 걸음, 그 고통의 “극”인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전진한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 고통의 문제를 다룬 사상의 발자취를 성서 신학사적으로 더듬어 봅시다.

① 처음 단계에서는 – 고통 받는 사람은 하느님이 저주해서 그렇게 된 것이고 부귀영화 누리는 사람은 하느님이 축복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 등 교조(敎祖) 시대에는 그런 해석이 일반화 되었었습니다.

② 고통은 하느님이 저주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제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욥”이 고통받을 때에 욥의 친구들이 욥을 괴롭힌 것은 이 사상이었습니다.

③ 고통은 자기 잘못도 아니고 하느님의 저주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운명의 우발적인 사건이라는 견해입니다. 구약의 “전도서”가 그런 내용이겠습니다. 한국에서의 “사주팔자”란 것도 같은 부류에 속할 것입니다.

④ 고통은 인간을 교육하고 훈련하기 위한 “교재”라는 것입니다. 고통없이 자라면 콩나물 시루에서 자란, 콩나물 같아서 키만 크고 등심이 없는 연약한 인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⑤ 그러나 그것도 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젊어서 고생하는 것은 혹간 그런 적극적인 교육이 될지 몰라도 늙은이의 고통은 죽음에의 고통일 터이니 “죽은 다음에 무슨 교육이냐?”하는 것입니다. 사형폐지론의 근거가 이런 데 있은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⑥ 그러다가 고통의 문제가 가장 건설적 창조적으로 다루어진 것이 구약 이사야 53장입니다. 고통은 고통 자체보다도 고통의 도전에 응전하는 인간의 태도에 따라서 “마이너스”도 되고 “플러스”도 된다는 것입니다.

(1) 참자는 태도를 새겨 봅시다.

몸부림쳐봤자 별 수 없으니 꾹 참자는 소극적인 태도입니다. 거기에는 건설적 창조적인 요소가 성숙돼 있지 않습니다. 동양윤리에 이런 유연성이 많습니다.

(2) 고통은 더 높은 삶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내가 우연 또는 실수로 화재를 당했다든지, 파산했다든지 큰 병에 걸렸다든지 할 때, 그 원인이 어디 있든지간에, 그것을 계기로 자기의 인간됨과 양심과 삶의 방향과 삶의 방법 등등에 일대 전향을 시도하게 됐다면 그만큼 고통이 축복으로 변한 것이 아니냐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가령 여기 살인강도, 죄로 감옥에 들어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형”이 “무기로” 됐습니다. 거기서 목사, 신부 등이 교양시간에 설교합니다. 승려면 “설법”을 합니다. 이 죄인은 거기서 하느님을 믿고 예수의 사랑을 알고 성령의 능력을 느끼고 기도하며 참회하여 거듭난 새 사람이 됩니다. 그가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그건 인간 갱신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고 목사, 신부 또는 교회사의 따뜻한 용서와 속량의 복음을 듣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갱신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두들 나쁜 일하고 감옥에 들어가시오?”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논리일 것입니다. 그가 악인이 되었기 “때문”에 구원된 것이 아니라, “악인 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사랑이 그의 악보다 더 크기 때문에 구원된 것입니다.

(3) 초월해 살자는 것입니다. 괴로우면 어떻고 즐거우면 어떠리, “인생 칠십이 고래회” 인데, 죽으면 모두가 북망산의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데! 청산도 절로 절로, 인생도 절로 절로인데 – 자연과 함께 자연에 삳라다 자연에 돌아가는 것이 만물의 “도”가 아니냐? 합니다. “도교”에는 이런, 자연을 초월하면서 자연에 사는, 그래서 고통도 즐거움도 “도인”을 괴롭히지 못하는 자유로운 경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4)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예수의 태도와는 다른 것인가 합니다. 예수는 이사야 53장에 있는 “고난의 종” 예언을 자신의 삶과 죽음에 적응시켰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고통”은 인간됨에 가장 중대하고 가장 엄숙한 과제였으며, 반드시 통과해야 할 생명에의 험한 길, 좁은 문이었습니다. 그는 고통과의 대결에서 그 자신의 생명을 모험했습니다.

그는 고통은 인간 구원의 속죄 제단이라고 보았습니다. 고통의 극치는 죽음입니다. 그는 자기의 죽음을 전인간, 창조에서 종말에 걸쳐 이 세상에 왔다 간 모든 인간들의 죄와 벌을 속량하는 용서의 제물로 바친다는 의식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사야 53장을 가장 애독하고 그대로 살고 죽고 다시 산 분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3:5-6).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통”의 가장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모험이었습니다. 부활에의 좁은 관문이고 영원한 생명에의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2천년 교회사는 십자가와 부활의 혈서로 엮어진 기록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가 고통을 일부러 찾아서 금욕주의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지만 예수는 서민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꺼리는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술을 즐기고 음식을 탐하는 사람”이라고 예수를 긁어 내리기도 했습니다.

예수는 “결혼식 잔치에 신랑과 같이 있으면서 금식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예수와 함께 있습니다. 즐겁고 명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바르게, 참되게 삶을 걸어갈 동안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가해오면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했습니다. 그러나 불가피한 경우 또는 피해서는 안될 경우에는 용감하게 대결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십자가를 앞둔 예수의 고민과 결단이 그 가장 좋은 실례라 하겠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만이 아니라, 예수의 전 생애가 그러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통의 선용”입니다.

예수의 선교생활 첫 Manifesto랄 수 있는 나사렛 회당에서의 선언은, 가난한 자, 병든 자, 불구자, 갇힌 자, 포로된 자 편에 서서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너희 눈 앞에서 내게 이루어졌다고 했을 때 고향 사람들은 “저 목수의 아들이 외람되고 건방지다”면서 벼랑에 끌고가 밀쳐 “추락사”를 시키려 했답니다.

가난한 자, 갇힌 자, 포로된 자 등을 해방시켜 자유인으로 만들려면 그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배후권력의 총공격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맨처음부터 십자가를 각오하고 그것을 응시하며 나간 것입니다. 선교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 40일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 없는 선교에의 유혹이었습니다.

① 악마에게 절하고 천하를 얻는다. 십자가 없는 영광의 유혹입니다. ② 기적으로 민중을 매혹시킨다. 거기에도 민중의 칭찬은 있어도 십자가는 없습니다. ③ 풍부한 물질로 민중의 생활을 부요하게 한다. 거기에도 물론 십자가는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데에 예수는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일갈했습니다. 그는 자기 희생적인 “무량애”(無量愛)의 실천인 “십자가”의 고통을 택했습니다. “고통”은 그에게서 만민구원의 한량 없는 사랑의 표현으로 영원한 생명의 샘터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최후 순간, 그는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를 부르짖으면서 버림받은 한 “고독자”, “참패자”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 때문에 받는 고통이었습니다. 위대한 사랑에 위대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그를 무덤에 가두지 않았습니다. 더 크고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 만민을 살리는 일을 계속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포악한 통치자라도 사람을 죽이려면 무슨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에게 붙인 죄목은 하나만이 아니었습니다.

① 정치적으로 유대 독립당 유격대인 “열심당”(Zelot)의 두목 또는 단원이라는 조작이었습니다. 그것은 “로마총독”의 결심을 유리하게 유도하기 위한 궤계였습니다.

② 종교적으로 신성모독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한 목수의 아들이 하느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하느님의 “거룩”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신성모독죄는 사형감입니다.

③ 사회적으로 그 당시 유대인 사회의 질서는 “율법”에 의하여 보장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자기가 “모세”보다 크다고 하고 자기가 율법을 완전케 한다고 했으니, 그는 사회질서를 파괴한 자란 것입니다. 율법을 훼방하는 자도 사형에 처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로마정부의 끄나풀인 세리, 불가촉 천민인 “나환자”, 인간취급 못 받는 창기 등을 친구로 대접하고 안식일에도 마구 일하고 하는 것을 보아, 그는 의식적으로 율법을 파괴하는 자란 것이었습니다.

오늘에 있어서도 진정 예수를 따르려면, 그에게 십자가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각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바른 말로 독재정권의 잘못을 비판한다면 반정부, 심하면 국가반역자로 몰립니다. 기성교회의 신앙과 행위, 또는 교리의 잘못을 비판하면 “이단자”로 몰립니다.

가난한 노동자, 실업자, 청게천에 구정물처럼 버림받은 빈민들을 돌봐주면 “공산당”으로 의심 받습니다. G.I. 마담이나, 창녀나 불량소년 등을 친구로 가까이 하면 교회 안에서 비난이 들끓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당시에도 “성전종교”에는 흥미가 없었습니다. 성전이 교권자들에 의하여 강도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회와 교회에서 버림받은 “권외인간”들을 찾아 제일선에서 그들의 고통을 나누고 그들의 소망이 되고 대변자가 되었습니다. 그 길을 일직선으로 걸었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에 통한 길이었기에,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뚫어 전진했습니다. 그 옆에 탄탄대로도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십자가의 고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절벽에 부딪혀서 더 갈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래도 마구 밀어 나가면 벼랑에 떨어져 죽고 맙니다. 거기에는 고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예수와 함께 고통을 영광으로 받는 크리스찬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그리스도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통은 남을 위해 받는 때, 의를 위해 받는 때, 영광으로 변질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생명으로 승리합니다. 나라를 사랑하여 나라를 위해 받는 고통, 민족애 때문에 받는 고통, 인간자유와 사회정의를 위해 받는 고통,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 “의”를 위해 받는 고통, 예수를 위해, 예수와 동행하기 위해,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고통 – 그런 고통들은 고통 그대로 영광입니다. 김지하가 사형언도 받았을 때 “영광입니다” 했다는 것은 이런 경지에서 치솟는 하늘의 축복이었을 것입니다.

L.A.에서 열린 기독학자회
발제강연겸 개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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