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9일 금요일

[범용기 제5권] (114) 동경에서 – 3S의 나라

[범용기 제5권] (114) 동경에서 – 3S의 나라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의 일이었다. 나는 1932년 만주사변 발발 때 귀국해서 13년동안 미국과의 교류가 두절된대로 살아왔다. ‘일제’의 ‘쇄국주의’ 보자기 속에 포장되어, 국한된 공간의 오염공기를 얻어 마시면서 목숨을 이었던 것이다. ‘뭍’에 던져진 물고기의 헐떡이는 숨가쁨이었던 것 같다.

8ㆍ15 해방의 소식은 하늘의 ‘기적’같았다. 그래서 ‘미국’을 다시 봤다. ‘메이플라워’의 청교도를 생각했다. 그레서 ‘제국을 실은 일엽편주’라는 단문을 썼다. 나보다 훨씬 후에 미국서 귀국한 젊은 친구들이 말한다.

“그건 현재의 미국이 아닙니다.”

나는 미국에 대한 잡지, 신문, 까십, 기행문 등등을 주워 읽었다.

“3S”란 얘기도 들었다. 전후의 미국은 Speed, Sports, Sex로 ‘수몰지대’가 됐다는 것이다. Speed는 무자비한 경쟁의 달음박질이다. ‘소련’을 앞질러 뛰어야 한다. Sports는 왕성한 체력의 ‘분화구’다.

용감하고 정의롭게 싸우는 행진이다. Sex는 인간해방의 용단이다. 남ㆍ녀 관계의 ‘새’ 윤리, 새 자유가 절규한다. 배고픈 사람이 밥먹고 목마른 사람이 물마시고 타오르는 ‘이성’ 연모에 Body로 말하는 것이 왜 잘못이냐는 것이었다.

‘피임’이 확률적이고 생활경제가 독립이니 ‘후환’도 대단치 않다. ‘북구’에서 ‘중구’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일본’에로 ‘Speedy’하게 퍼진다. 그래서 ‘3S’란 공식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것은 Sorokin이 말한 Sensual Civilization이어서 동물의 경우에서 보다도 더 ‘극성’이다. 동물은 생식을 위한 ‘수태’ 수단으로만 허용되지만, 인간에게는 거의 ‘무한궤도’ 같이 연속되는 자유향락이다.

그래서 나는 딴 의미에서의 3S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Spirituality, Sincerity, Simplicity의 ‘3S’라고 할까요? 기독교회가 좀더 적극적으로 이 ‘메시지’를 외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크리스챤 가정이 ‘누룩’과 ‘빛’과 ‘소금’ 노릇을 해야한다고 절감했다. 북구의 교회들이 너무 무기력하다고도 해 봤다.

그러나 ‘마이동풍’이랄까? “우리 다 생각이 있어요! 그건 내 Private Life예요…”

여기서도 ‘율법주의’적으로서는 안될 노릇이었다. 더 높은 차원에서의 ‘복음적’인 의미가 체득되어야 할 것이라 느꼈다. 교회에서의 결혼서약은 엄숙하다. 어떤 경우에서도 사랑하고 돕겠느냐 한다. 사랑은 영원하다. 영원해야 한다. 부부사랑은 인격적이다. 그것은 Romance만이 아니다. 의지적인 ‘육성’에서만 항구하고 성숙한다. ‘사랑’이 없어도 ‘의리’로 성숙한다(194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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