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4일 금요일

[범용기 제4권] (82) 野花園餘錄(其四) - 잠 안오는 밤

[범용기 제4권] (82) 野花園餘錄(其四) - 잠 안오는 밤

잠 못 자는 밤이 많아진다. 방이 추워서도 아니고 너무 더워서도 아니다. 외계의 영향은 아닌 것 같다.

자리에 눕기는 했지만 새로 네시 다섯시까지 엎치락 뒷치락이다. 한쪽 팔을 깔고 모제비로 누우면 십분도 못가서 팔이 저린다. ‘펌핑’이 시원찮아서 그런갑다고 내나름대로의 진단을 내려보기도 한다. 무슨 깊은 곳에 생각의 굴착 파이프를 내리박고 원유 뽑듯 생각을 끌어 올리노라고 잠 들 사이 없어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생각이 아주 없달 수는 없겠지만 “초두부” 같아서 틀이 잡히지 않는다.

본국 소식이 너무 암담해서 애국충정 때문에 잠 못 이루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거리가 좁혀졌다해도 지구의 저쪽 편, 바다도 구름도 이어지지 않고 태양빛마저도 절반으로 꺾어서야 겨우 비취는 아득한 먼 고장, 거짓 사건들을 자리에 누운채 카메라 눈알에 그려 넣기에는 내 상상이 너무 허술하다.

써 낼 글을 구상하는 것일까? 어떤 경우에서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주 반짝 빛나고 신묘한 글이 떠오르는 것으로 자부한다. 그래서 그놈을 솜틀 듯 고루 펴고 ‘편’을 만들어 쌓아 놓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깨어났을 때에는 거의 전부가 망각의 ‘심연’에 가라앉고 만다. 간혹 생각나는 것이 있어도 그야말로 “꿈 같은 얘기”어서 씨가 먹지 않은 그대로다.

본국의 수난동지들 생각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다. 잠못 이룰 정도로 그들의 고난에 나를 일치시킬 ‘성자’가 된 나는 아니다. 생각하면 분노도 솟구치고 가학자에 대한 욕설도 늘고 ‘way out’이 똑똑찮아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 농도가 잠못 이룰 정도로 짙지는 않다.

사실, 1974년 겨울 - ‘알라스카’를 연상할 정도로 눈이 쌓이고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날, 나는 ‘스카아보로’ 계속 언덕바지를 내려오고 있었다. 가벼운 체중이라, ‘차도’에 날려 떨어질뻔도 했다. 무던히 뚱뚱한 한 백인 할아버지는 길가 전신주를 얼싸안고 서 있었다. “다리가 바람에 들먹여 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하면서라도 걸어야 합니다” 하고 나는 그에게 충고했다.

나는 눈보라 속에서 감옥 속 동지와 후배들을 생각했다. 세멘 바닥에서 생발이 얼어 퉁퉁 붓고 터져서 진물이 흐르고, 그러면서 기쁨의 신학을 구상하고 시와 노래의 영감에 잠기고 – 그런데 나는 해외에 ‘공동전선’을 편잡시고 여기와 있다. 본국에 있었댔자 나같은 늙은이를 감옥에 쳐 넣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떨어져 있는 것이 주님 앞에 죄스럽다. ‘길트 콘센트’ 같은 게 맘둘레를 순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짐짓 그들의 고난을 나눠 보자.” 그래서 길까지 묻혀버린 눈 사태를 귀가림도 없이 마구 텀벙댔다. 집에 왔을 때, 귀도 반쯤 얼고 손도 설 얼었다. 몇해 두고 가을이면 귀와 손이 가렵고 아렸다. 그러나 그건 ‘자학’ 이외의 다른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수난동지의 고난에 몸으로 동참한다는 것도 애매한 소아병 따위랄까. 잠못 이룰 정도의 ‘진실’일 수가 없다.

내게 있어서 ‘잠 안오는 밤’은 정신과 의미의 세계에 닿는 ‘고뇌’는 아닌 것 같다. ‘이유 없는 불면’이다. 아예 무시해 버리자! 언제부터 잤는지, 아침 아홉시에사 깨났다.

댓글 1개:

  1.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판단한다...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좋게 포장하고 싶고... 뭔가 숭고한 뜻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심리다...

    머나먼 타국에서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내는 김재준 목사는 '이유 없이' 잠이 안온다고 하면서... 그것이 반드시 고국에서 수난당하는 동지들을 향한 생각 때문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김재준 목사의 '범용기'를 읽다보면... 진정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솔직한 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또한 그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 않음... 영웅적인 삶으로 포장하지 않는 순박함... 그러면서도 삶 속에서 일관성을 잃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간 그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영웅주의에 심취한 시정잡배들 같은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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