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4일 금요일

[범용기 제4권] (83) 野花園餘錄(其四) - 10년에 한번씩 넘어야 할 고개

[범용기 제4권] (83) 野花園餘錄(其四) - 10년에 한번씩 넘어야 할 고개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대략 10년에 한번씩 넘어야 할 고개가 있는 것 같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10년 세월은 인생과 역사만이 아니라 산천까지도 제 몰골대로 두지 않는단 말일 것이다. 어쨌든 모든 것이 변모한다.

인간의 몸도 현저하게 달라진다. 그 달라지는 고비에서 ‘해산의 수고’랄까, 몸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한다.

나 자신의 경험대로 말한다면 50에서 60고개를 넘어설 때, 신경통과 건망증이 심했다. 그때, 나는 청량리 전농동에 살았는데 동대문에서 전차를 갈아타야 했었다. 갈아타는 고장에 와서, 암만해도 이상한 것 같아서 동대문을 두 서너번 맴돈 일도 있었다. 손가방을 전차나 기차에 놓고 내려 막내 녀석을 괜스레 고생시킨 일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경동교회에서 설교하다가 신경통에 가슴이 결려 강단에 주저앉기도 했다.

60세에서 70세에의 봉우리는 무던히 숨가빴다. 심한 대장염이어서 아랫배가 걸레짜듯 뒤틀린다. 서대문 적십자병원 내과 과장서리로 있던 ‘하용’ 조카가 앰불란스에 싣고 ‘윙’ 거리를 마구 달려 독방에 입원시킨다. 두달만에 성한 몸으로 나왔다.

70고개를 넘어 80을 바라볼 무렵에는 요도를 조절하는 ‘전립선’이라는 두 ‘그랜드’가 자기 자신들의 세력을 팽창시켜 좌우로 요도를 압박하는 바람에 ‘오줌길’이 막히고 먹지도 못했다.

나는 한신동문회와 교수들이 주최한 나의 희년기념축하연에 가까스로 나갔다. 거기서 나는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모아놓고 고별설교하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70 고개를 넘어 80에서 90까지의 길은 어떤가? ‘인권존중’, ‘민주건설’ 따라서 모든 형태의 ‘독재’ 반대가 세계적인 조류로 밀려온다. 한국의 독재항거는 세계문제다. 적어도 자유진영을 한 덩어리로 응결시키는 공동전선이 시급하다. 그래서 나는 자녀들 사는 캐나다로 왔다. 기회의 문은 활짝 트여 있었다.

그 동안의 해외기록이 ‘악질’이래서 두달 기한의 방문여권이 2년이 되고 3년이 되고 귀국가망은 이제 시원찮은 계산이다.

그럭저럭 80 고개를 넘어간다. 무사하게 넘을 건가? 이번에는 ‘간염’이 문제란다. 그러나 “내 갈길 멀고 해는 저문데…”를 노래하면서 90의 눈산(雪山)을 향해 “배 때기 걸음”으로라도 올랐다 굴렀다 계속은 할거다.

[1981. 6. 1]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