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3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80) 자연은 인간의 큰 집 – 홍엽속의 이틀

[범용기 제4권] (80) 자연은 인간의 큰 집 – 홍엽속의 이틀

박재훈 박사가 단풍 ‘천렵’을 가자고 왔다. 내가 단풍 ‘구경’이라 하지 않고 ‘천렵’이라고 쓴데는 이유가 있다. ‘천렵’이란 것은 냇물에서 고기를 손수 잡아다가 제손으로 배를 따고 씻어 냇가 우동불 윗 남비에 끓여 거기서 먹는 ‘풍류’의 흥겨움을 의미한다. 이번 ‘단풍구경’도 지나가며 슬쩍 보구 마는 것이 아니고 단풍광경 하나하나를 잡은 고기인 듯 머릿속 망태에 넣고 눈망울에 그려 한 거대한 조물주의 화폭으로 내 세계를 덮고, 나도 그 속에서 오래오래 살자는 의도에서였다. 도교적인 삶의 향기다.

10월 8일 아침 열 한시에 떠나 이튿날(10월 9일) 늦게까지 우리 둘은 무스코가 큰 길을 달려 ‘베으스’ 호반 ‘또올셋’ 숙사에서 하루밤 지내고 이튿날에는 ‘뜨와잇’에서 잠시 알공퀸 주립공원을 돌아 ‘헌쯔빌’을 지나 ‘페리싸운드’ 항구에서 유람선으로 3만섬 사이를 스쳐 세 시간! 돌아와 차를 ‘초속도’로 몰아 저녁 여덟시에 토론토 시내에 왔다. 무던히 먼 거리다.

산, 언덕, 길, 섬, 모두가 ‘홍엽산맥’이다. ‘만산홍엽’이 폭 넓은 황금 Mantle을 감색 호수물에 살짝 스치고서 고루 허리에 여미는 자태는 길손의 가슴을 매혹한다. 길은 모두가 포장된 ‘하이웨이’다. 어떤데는 갖 편 ‘코올타아르’ 냄새가 목향에 섞여 보드랍다. 좁은 두 줄 차도는 예외없이 황금 턴넬을 뚫고 나간다.

가을 날씨는 변덕이 많다는데 우리의 이틀은 마냥 맑고 보드라웠다.

풍림은 보드라운 햇님 얼굴이 웃어줄 때마다 방긋 빛난다. 햇님 빛깔에 홍엽이 섞여 햇빛이 떠오른다.

옛날 중국 시인은 “홍엽은 이월의 꽃보다 낫다”고 했다지만, 이월의 꽃 정도로는 비교가 안된다. 그렇게 차고 넘치는 색채의 풍요함이란 여기를 빼놓고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호수에 잠기다 남은 3만 섬들에도 풍림은 풍요하다. 그러나 대체로 한주일쯤 뒤에야 그 영광의 왕관이 머리에 쓰여질 것 같았다.

홍엽은 겨울을 앞둔 숲의 억억만 생명이 내뿜는 최후의 정열이다. 미련없는 죽음의 보람이다. 앳된 신록에서 검푸른 힘의 밀림, 홍옥으로 수 놓은 황금의 왕복 – 그리고서는 ‘낙엽’

낙엽은 장죽을 입에 물고 부채 하나 손에 들고 정든 고향집 사립문을 나서는 방랑객이라고나 할까! 바람에 옷자락을 싣고 훨훨 하늘 공중을 날아 흐른다.

다음에 남은 나목 – 그것은 귀양간 임군, 구걸하는 늙은이, 풍류 없는 유랑민, 나라 없는 백성 – 알몸으로 눈속에 떤다. 그러나 미래는 얼지 않아, 잉태된 봄은 고요히 그 속에서 자란다.

선친의 “냉좌”란 한시 한구절이 떠 오른다.

“온돌”이란 “냉돌”에
옷 갈피 차가와

언눈 창살 때려
하얀 집 흔들리고,

바람 사나와
푸른 등불 눌린다.

그래도 오리라-
벼개 기대 생각는 봄,
이불 안고 기다리는 아침해…”

번역이 시원찮아 송구스럽지만, ‘알몸’으로 북풍한설과 싸우며 봄 기다리는 ‘겨울 나무’와 통하는 데가 있다 싶어 낙엽을 거니며 이렇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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