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1일 화요일

[범용기 제4권] (68) 細語錄(세어록) - 싱거운 행복

[범용기 제4권] (68) 細語錄(세어록) - 싱거운 행복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어찌 다시 짜게 하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것은 예수가 크리스챤을 세상의 ‘소금’이라고 비유하면서 한 말씀이다.

소금 본래의 맛은 짠데 있다. 맛을 잃는다는 것은 싱거워진다는 말일 것이다.

요새 북미주에서 자라나는 세대와 통하려면 우선 Funny하고 Happy해야 한다. Fun에서 웃고 Happy에서 산다. 전에도 물론 Humor니 Sarcasm이니 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문을 열게하는 선봉장 노릇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Humor에도 따끔한 ‘진실’이 알맹이로 내재해야 그 Humor가 무게를 갖고 사람들 맘 속에 도사린다. Humor를 위한 Humor, 웃기기만 하면 익살꾼의 말 장난 – 그런 Humor는 공허하다.

Sarcasm은 남의 허점을 찌르는 바늘 끝이다. 신랄할 빈정댐이다. 그러나 그것도 Humor의 당의(糖衣)를 입고 나서야 한다. 그렇잖으면 남을 소격시키고 원한을 키운다.

진짜 Humor나 Sarcasm에 재간 없는 사람은 직백이로 자기 진실부터 얘기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좀 무뚝뚝하지만, 원숭이 곱새치기는 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Happy하다는 것은 ‘즐겁다’, ‘행복하다’는 말이다. 동양에서는 태고적부터 “수, 부, 귀, 다남자”를 복으로 친다. “壽”(수)는 땅 위에서 오래오래 사는 것이고, “富”(부)는 오래살되 가산이 넉넉하여 부자노릇하며 사는 것이고, “貴”(귀)는 높은 벼슬아치나 만민에게 존경받는 ‘이름’의 빛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多男子”(다남자)는 아들이 많다는 것인데 농경시대의 부자란 경작지를 많이 갖는 것이니만큼 경작할 능력이 많아야 했다. 아들이 많으면 농업노동력이 강하고 따라서 농산물 수확이 풍요해진다. 그래서 “다남자”가 행복, Happy의 내용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도 ‘아들’을 더 좋아하는 습성이 남아 있다.

그런데 예수의 이른바 “8복”이란 교훈은 엉뚱하게 대척적(對蹠的)이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슬퍼하는 자가 복이 있다”, “불쌍이 여길줄 아는 자가 복이 있다”, “남에게 푸대접 받는 자가 복이 있다…” 등등 통틀어 말한다면 ‘정의’를 앞세우고, 자기 중심적인 세속적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 “福者”(복자)라 했다.

그런데 요새 말하는 Happiness는 일반적으로 ‘세속적’ 가치기준에 속한다. 달콤한 연애, 안정된 직업, 제각기 갖는 자동차, 여름철의 휴가여행, 마이아미의 해수욕장, 젊은이들의 Sports, Sex, 그리고 영속성 없는, 영속성을 기대하지도 않는 결혼, 양보 없는 부부간 말썽 등등이 하루 아침에 Happiness를 지워 버린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우리 속담도 있기는 하지만 너무 도수가 잦으며는 ‘칼’로 살을 베이게도 되는 것이다.

Happiness의 즐거움은 좋다. 그러나 그것이 더높은 차원에서의 윤리화, 정신화하는 데서 믿음직하고 깨끗하고 ‘아가페’화 한다. 그래서 항구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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