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3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31)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Lest We Forget”

[범용기 제4권] (31)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Lest We Forget”


(不忘碑)

예수는 마감날이 가까워오자 “나를 기억하라”, “Remember me!”란 말이 많아졌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이란 잠재의식 속에 침전되어 갈피갈피 “수성암”을 이루어 가는지는 몰라도 늘상 표면에 떠 있지 못한다. 그래서 “불망비”도 세워보고 기념식도 해 보고 요새 와서는 “카셋”도 만들어 두고 아예 영화도 만들어 두고 한다. 그러나 그런게 모두 시끄러우니까, 요새는 Forget about it이 성행한다.

예수는 “최후만찬”에서 고별식사(食事)를 “성례”화했다.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을 먹고 나를 기념하라”하며 한 덩어리 “빵”을 돌아가며 한조각씩 떼어 먹게 했다. 그리고 또 포도주 한 주발을 들고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이것을 마시고 나를 기념하라…”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아니하면, 3년을 따라다니던 제자들까지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잊어 버릴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 마음 속에 이런 “불망비”를 세워 자기를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Armistice Day(휴전기념일, 11월 11일 제1차 대전 휴전된 날) 모든 생존한 재향군인들의 시가행진도 “Lest We Forget”의 정신이다. 참전자의 “영광과시”라기보다도 전쟁없는 만국평화를 위한 미래지향형이라 하겠다. 그러나 시민대중에게 주는 인상을 반대로 나타난다. “우리는 나라 위해 목숨바친 애국자다”, “우리를 잊지말고 기억해다오!” 하는 “데모”로 보인다.

우리는 이 “Old Soldier”들의 심경을 냉소할 수 없다. 아무리 절대 평화주의자라 하더라도 전쟁의 비참 없이는 평화가 뿌리 내릴 지층이 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산속의 백합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풀로렌스 군인 무덤 옆에 혼자 핀, 야윈 백합 한 송이만큼 인상적일 수 없을 것이다.

평화를 위한 전쟁이, 전쟁을 위한 평화로 악순환한다. 이제 제3차 원자전쟁이 난다면 “너 죽고, 나 죽고” 인류는 전멸한다. 전몰군인 무덤도 없으니 그 옆에 필 한송이 백합도 없다.

예수는 인간의 호전(好戰)의식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싸우지 말라”해도 싸우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예수는 “싸우라 나도 끝까지 싸운다. 죽기까지 싸운다. 죽은 다음에도 싸운다. 다시 살아나서 불사조(不死鳥)가 되어 싸운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 사람 살리는 싸움에 목숨 걸고 나서자 하는 “출사표(出師表) 선언”이다. “내가 앞장선다. 따라 나서라”는 것이다. “전 우주적 사랑공동체”, “하느님 사랑의 보편왕국”은 이미 그 뿌리를 이 땅에 내리기 시작했다. “사랑”은 너희 피와 살을 요구한다. 사랑은 사랑하는 자를 위해 죽는다. “이것은 너희를 살리기 위해 주는 내 살과 피, 내 전 존재다. 이것을 받아 먹고 살아라. 전인적(全人的)으로 살아라.” 하는 것이다. 잊어버리지 말아다오 “Remember Me!”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소수 선택된 자들 중에서도 의심적인 반역자도, 약해서 잊은자도 생겼다.

“불망비”는 역시 필요하다. “Lest We Forget!”

[1981. 6. 18]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