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3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30)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損之又損(손지우손)

[범용기 제4권] (30)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損之又損(손지우손)


한동안 목회하는 목사님들도 본국의 반독재 민주회복 운동에 적극 가담했을뿐 아니라, 제일가는 열성부대의 앞장을 서온 일이 있었다.

그러나 요새 들려오는 소문에는 “나는 민주운동에서 손해만 봤다”하고 후퇴하는 분도 있다고 한다. “손해” 봤다는 것은 교인을 잃기도 하고 교회 일에 등한한대서 말썽이 생기기도 해서 꿩 쫓다가 집안에 닭 잃는 식의 “손해”란 말이겠다. “인제 그런 어리석은 일은 안한다”하고 아주 도도한 사람도 있다.

그런데 본국에는 아직도 임순만 박사가 “제3일” 백호기념 논문에 쓴대로 “바로족속”들이 있어서 연방 감옥에 가고, 학생들은 짐승처럼 두들겨 맞고, 동료동지들 중에는 60대의 몸으로 종신형 15년형 등등 장기 옥살이를 그대로 계속한다. 문익환은 종신징역인데 거기서 시를 쓴다. 맘을 정하고 너무 외로우면 이부자리를 구석장이에 고이 앉혀놓고 찾아온 친구인양, 얘기하며 “시”를 읽는다. 어딘가 돌았어!로 끝내기에는 너무 몰인간적이 아닐까? 한국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군국주의로 되버렸고 또 세계 정세로 보아 그렇게 될 운명에 있어! 안될 일에 왜 투자하나! 나는 손 뗐어! 그게 상식이겠지! 그러나 그게 진리는 아닐거다. 목사란 현실에서 손해 봐도 진리에서 이기는 인간이 아닌가? 예수 “이미지”가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물론 “바보”같겠지만 그건 좋은 의미에서 하는 말이지, 진짜 “바보”란 말은 아니잖는가? 말하자면 “진리”를 위해 손해보는 “바보”란 말이다.

“노자”는 “손지우손”을 말한다. 손해보고 또 손해보고, 그래서 아무것도 없어서 이제는 “손해볼” 건더구니가 없게 된 때, 그 “진공”에 “도”가 찾아든다고 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에 달려 자기 몸 죽고 제자들 흩어지고 하나님 잃어버릴 때 그는 “다 이루었다”고 외쳤다.

목사가 진리 때문에 뭔가 손해봤다면 그건 손해가 아니라 “소득”이다. 그리스도의 “없음”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손해 봤다면 “교회이기주의”에 손해봤다는 것이겠고 교회주의 즉 Churchism에 손해봤다는 것이겠다. 그래서 서울 영락교회처럼 “성공”하지 못했다는 “유감”일 것이다.

목사로서 자기 교인 하나라도 잃는다는 것이 마음아픈 일이다. 그러나 교회가 예수의 교회요 어느 개인 목사의 “직장”이 아닌 다음에는 “내가 곧 진리다”한 예수와 함께 진리증거자부터 되야 한다. 그것이 제일차적인 의무다.

[198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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