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3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27)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목사의 심정 (1)

[범용기 제4권] (27)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목사의 심정 (1)


목사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를 전업(全業)으로 봉사한다. “전업”이란 말은 “부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목사의 심정”은 그대로 “그리스도의 심정”이어야 할 것이다.

목사의 전공학문은 “신학”이다. 신학적으로는 Specialist여야 한다. 신학의 분야는 넓고 깊다. 그러므로 너무 “속성”(速成)을 노려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평생을 “학도”로 지내야 한다.

목사는 “실업인”이 아니다. “돈”을 탐해서는 안된다. 언제든지 결단의 길목에 설 때에는 “그리스도냐 맘몬이냐”의 양자택일의 유혹에 직면한다. 그 순간의 선택은 Either or요 “Both and”가 아니다.

목사는 기술자다. 지금은 기술학적 시대다. 그러므로 목회도 기술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목회상담학, 교회치료법, 교회법전, Liturgics, 노인학, 사회학, 국제관계, 정치와 교회, 세계교회협의회와 개교회, 개교회와 상회관계, 등등에 능숙해야 한다. 그래서 변천하는 세계와 함께 언제나 성실한 지도자로 앞장서야 한다.

목사는 권위주의여서는 안된다. 다만 신앙과 행위에 흠잡힐데 없으면 된다. 교회기관 안에서도 “유명하다”는 목사가 있다. 고관들도 그를 상대로 얽힌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한번 높은 벼슬아치를 만나 너ㆍ나 하여 통사정할 수 있고 그 덕택에 안되던 일도 되어나온다면 그때부터 목사자신이 “고관”이 된 기분에 놀아난다. 그래서 시시한 “천민”들은 상대하길 꺼린다. “내 그래봐도 뭔데, A Somebody인데! 그 따윗 것들과 섞일거냐?” 말하자면 “도도”해진다. 스스로를 Dignity한다. “아이들말로 하면 ‘잰다’.” 그때부터 그는 권위주의자요 섬기는 자 아니게 된다.

목사는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 외로운 사람, 문제인간 – 모두 위로하고 격려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팔팔한데, 저이는 바보같이 비실비실해! 제가 제 몸 건사도 못하면서 뭐 큰 소리만 치면 되는 줄 아나?” 이래서는 안된단 말이다.

무엇보다도 목사는 “시인”이어야 한다. “시인”은 결코 자기를 속이지 못한다.

시에는 타산이 없다. 목사는 적어도 시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하고 그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문학을 좋아해야 한다.

미술애호도 목사에 대한 불가피한 요청이다. 목사가 서도나 그림이나 동양목화나 서양화나 간에 영영 거들떠볼 의욕도 갖지 않고 쓴 오이 보듯 경멸한다면 그는 그리스도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시혼(詩魂)이 가슴에서 “샘”처럼 넘쳐 흐르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목사는 다른 종교나 종파를 독단적으로 혐오하거나 잘라버리거나 냉소해서는 안된다. 전 우주만물이 “한 생명공동체” 안에 있다. “전 인간과 문화는 우주적 사랑의 보편왕국” 이른바 “역사 안의 하느님 나라”기 때문이다.

목사는 이 우주적 “사랑공동체”의 일꾼이요, 월급받고 고용된 삯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사의 심정”은 “기존 바운더리”를 넘어서는데서 고귀하다.

[1981.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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