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3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25)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死而後己(사이후기)

[범용기 제4권] (25)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死而後己(사이후기)


죽은 다음에는 몰라도 죽는 순간까지는 그만두지 않는다. “死六臣(사육신)”의 경우, 그들의 절개는 그러하였다. 성공하든 못하든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한다. 숨질 때까지 변절은 없다. “士心(사심)”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그 이상이었다. 죽기까지 한다. 죽으면서도 한다. 죽은 다음에도 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야 진짜로 이긴다. 영원한 개선문이 열린다. 그때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아버지로부터 ‘아들’인 나에게 주어진다. 그래서 영원한 “理想王(이상왕)”, 메시야가 “하늘나라”를 땅에 정착시킨다. 인간역사가 변질된다. “전 우주적인 사랑의 공동체”가 실현된다. 이것이 예수의 투쟁목표였다. 이런 거대한 “풀랜”은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아니며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 “나는 이 땅에 하늘나라 터를 닦았다. 「머릿돌」을 놓았다. 나는 하늘 아버지 오른 편, 내 직위 자리로 간다.” 그의 “육체”는 “영체”로 승화하여 우주의 영계로 올리워졌다. “그 동안에 너희 인간들이 할 일이 있다. 너희 인간 하나 하나가 내 영의 內在(내재)로 나를 본떠 ‘인간갱신 운동을 계속해라’, 내 영의 불꽃이 너희 속에 이글이글 타게 되면 너희 전 존재가 영광의 횃불로 하늘에 치솟을 것이다. 그리고 불꽃은 두들기는대로 튕겨 전 세계로 퍼져 산불(山火)처럼 탈 것이다. 그 때에는 내가 너희에게 하던 말이 기억날 것이다.

“내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기를 내가 얼마나 원했던고!”(누가 12:49).

“성당의 뾰족탑은 하늘을 태우려는 땅의 불꽃이나. 땅을 태우려는 하늘의 불꽃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 그게 거꾸로 붙으니 딴것들이 땅에 불을 지른다.

우리는 “주여 오시옵소서”하고 사과나무 밑에 입을 벌리고 벌렁 자빠져, 언제 저 사과가 내 입에 쏙 들어오나 하고 기다린다.

예수는 아마도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하고 채찍으로 후려 갈길 것이다.

지금은 “혁명의 시대”라고 한다. 혁명은 하나님의 채찍이다. 심판은 먼저 교회에 내린다. 왜 그럴까. 그래도 저 피묻은 군화바닥으로 “하느님의 형상”을 밟아 짓이기는 군정 “왕초”보다는 교인이 낫지 않은가?

그러나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고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푼다. 역사는 이제 너희가 맡았다고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유언처럼 남긴 것을 배신한 죄가 있다. 그 “너희”가 누군가? 지금으로 말한다면 7억이 넘는 크리스챤 인구가 아닌가? 공산주의자는 “사자” 같이 “혁명”하는데 “기독자”는 왜 밤낮 매매하고 양같이만 구는가? 역사가 “사자화” “이리화”하기 전에 인간화 그리스도화 하게 하라는 하늘의 “명”을 저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그리스도는 오지 않은 것이 아닐까,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죽으면서도 그 “톤”(Tone)을 낮추지 않는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은 약속된다. 역사는 주어진다.

[1981.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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