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3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20)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주인과 주역

[범용기 제4권] (20)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주인과 주역


우리가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른다. “주님”이란 말은 “주인되는 분”이란 뜻이다. 하나님이 만물을 지으시고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그 인간에게 주인의 뜻을 따라 자연을 관리하며 역사를 운영하라고 맡기셨다. 이 방향에서 마태복음 12장 1-12에 있는 포도원 비유를 읽어본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요, 포도원을 맡아 가꾸고 열매를 거두고 하는 인간들은 “일꾼”이오 “스튜워드”이다. “포도원”을 “역사”라고 한다면,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역사를 운영하는 인물들은 “主役(주역)”이다. 그 주역이 누구냐? 전제군주시대에는 주역이 왕이었다. 민주시대에는 대통령이라 하겠다. 그리고 민중민주주의 시대에는 “민중”이 역사의 주역일 것이다. 그러나 주인은 변함없는 “하나님” 자신이다. 그가 역사의 “알파”와 “오메가” - 처음과 나중이시다. 지금은 “알파”에서 “오메가”로 나아가는 “중간시대”다. 이 중간시대에도 주인이신 하나님이 역사를 심판하심과 아울러 갱신하신다.

가령 우리가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한다면 “민중”이 역사를 제 욕심대로 휘두르기도 하고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죽여라”고 고함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다수라는 의미에서 정당화 될 수도 있겠고 더해볼 데도 없으니 그 자체가 최종 판결이 된다. 공산혁명 때 소위 “인민재판”이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민중이 그때 그때 역사에서 주역일 수는 있어도 “주인”일 수는 없다. 주인은 하나님이시다고 한다면 무법 폭력의 횡포 아래서도 우리가 역사의 “주인”인 그 분에게 호소할 공간이 생긴다. 주인이 옳게 여긴다면 “주역”을 갈아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포도원 농부들이 포도원 주인에게 드릴 분깃을 드리지 않고 자기들이 횡령할 뿐 아니라, 주인의 아들까지 살해하고 포도원 자체를 아예 자기 소유로 만들어 “영구집권”하려 했을 때, “주인”은 그 악한 “주역”을 갈아 버렸다는 얘기다.

최근 한국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본다. 미국에서도 같은 경사면을 굴러내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해방직후에 “한 크리스챤의 건국이념”이라는 초고를 발표한 일이 있다. 거기에 나라의 주권은 집권자에게도 백성에게도 본래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주권은 하나님에게만 있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주권”이란 것은 “주인되는 권리”를 의미한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의 마감 구절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오직 아버지의 것이옵니다.”

정치권력이고 경제권력이고 간에, “주인”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받아 그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뜻을 준행한다면 몰라도 그 “바운더리”를 무시하고 담을 넘어 침입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않느니라”(요한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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