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3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19)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하나님은 왜 소외돼야 하는가?

[범용기 제4권] (19) 主人(주인)과 主役(주역) - 하나님은 왜 소외돼야 하는가?


삼국유사를 읽노라면 “도승”들의 초육체적, 초인간적인 자유로운 변모 얘기가 수두룩하다. 저자가 스님이니까 더 그러했는지 몰라도 그만큼 역사와 종교가 합작하고 있었다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정일치” 시대였으니까 그럴법도 하겠지만 그때에도 역사가들은 역사기록에 “神(신)”의 자리를 허락한 일은 거의 없었다. 역사가 순전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기록만이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기록에서, 그 속과 그 뒤에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을 보는 눈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역사철학도” 생기고 “History”가 “His Story”란 말도 나온 것이 아닐까? 역사의 흥망성쇠가 Cyclic하게 운명적으로 “윤회”한다는 견해도 그럴 듯 하지만 어떤 인간 또는 어떤 집단이 그 “싸이클”을 뚫고 튀어나감으로써 그 “싸이클” 자체를 “운명”에서 “사명”에로 갱생시키는 “火剪(화전)”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경우에 그 새 역사의 주역이 누구냐 하는 질문도 나올법하다. 극소수의 집권자는 기득권 안에 안주하려 한다. 중산층과 “인테리”나 “기술자”들은 지배자의 이익배당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선뜻 튀어나오기 어렵다. 그밖에 “민중”이란 이름의 피압박, 피착취계층이 있다. “數(수)”로 따진다면 그들이 절대 다수다. 그러나 그들은 지배자들이 운영하는 기계의 톱니바퀴에 걸려 톱니바퀴 돌아가는대로 돌기만 한다. 그들은 그 기계의 제품 “과정”이지, 제품 자체와는 상관이 없다.

그럴 수 있느냐? 우리는 “인간”이지 “기계”나 “기계의 부분품”이 아니다. 우리도 너희 지배층 인간과 꼭 같은 “인간”이다. 하고 대든다. “아니다”하고 지배층은 말한다. “인간이면 다 인간이냐 인간다와야 인간이지!” “우리는 머리 좋고 대학 나오고 정밀기계까지 다룰줄 아는 전문 기술자들이고 정치, 경제, 사회의 각 분야에서 지도자적 역량을 기른 사람들이다. 너희는 우리에 비하면 기계의 한 부분 구실 밖에 못할 무자격자가 아니냐?” 한다.

사실은 그렇다. 그래도 우리도 “인간인데” - 그래서 창세기 제1장을 읽는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는데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시고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다. 우리도 인간이라면 다 “하나님의 형상”인데 왜 기계처럼 짐승처럼 다루느냐? 안된다.?”고 일어선다. 이건 “종교적”이다. 돈도 권세도 “數(수)”도 갖지 못한 한국 반독재민주 운동 지도자들이 어떻게 죽음도 감옥도 “남산”도 코웃음치고 즐겁게 노래하며 거리에, 산업기관에, 빈민촌에, 그리고 빈농들 마을에 나가느냐? 하나님이 그들더러 가라하시니 간다. 하나님이 고생하라 하시니 고생한다. 고생 속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고 ‘영광’이 머문다. 그래서 종교가 역사 속에 누룩이 되고 인간 사회에 빛이 된다. 썩어가는 생고기 속에 소금이 된다. 세상 역사 기록에는 하나님이 없으나 하나님의 역사 속에는 그들이 있고 민중이 있고 세상이 있다. 우리나라 애국가에서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가 되새겨 불리운다. 고난 중에 민주운동자들에게 “하나님”을 소외시켜 보라! 샘터 없는 웅덩이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민중”은 더 철저한 기계가 되든지 그렇잖으면 오합지졸이 되든지 할 것이 아닐까?

[1980.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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