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8일 화요일

[범용기 제4권] (15) 상한 갈대 – 앉은 불상

[범용기 제4권] (15) 상한 갈대 – 앉은 불상


절간에 가면 본당에 불상이 안치돼 있다. “실란”(Ceylon)에는 누워 자는 불상도 있고 우리나라 부여에는 서 있는 유명한 불상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는 거의 전부가 앉아서 눈을 내리뜨고 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얹은 모습이다. 보리수 밑에서 명상하던 석가모니를 본뜬 것이 아닐까 싶다. 생각에 잠기고 고요한 속에 염원이 고이고 자비의 미소가 입술에 감돈다. 앞에 꿇어앉은 스님은 경건하다. 백팔염주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경을 왼다. 아낙네들이 새전궤에 돈을 던지고 합장한다. 아가씨들이 좋은 신랑 달라고 머리 숙여 속삭인다. 불상은 말이 없다. 그러나 무언가 인상적이다. 단순한 미술품이기에는 너무 정령적이다.

이 바쁜 세상 – 자동차, 버스, 지하철, 기차, 비행기 등등이 뵈틀에 “북”인양 공간을 누비는 세상에서 백년 천년 한 고장에 도사리고 앉은 불상은 확실히 전근대적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없는 말을 던진다. “너무 날뛰지 말고 조용히 앉아 너 자신을 알아봐라.”

“좌상”은 무게를 전한다. 묵직해서 미답다. 아무리 까부는 인간이라도 불상을 까불게 할 생심은 못한다.

나는 어떤 경우 어떤 모임에서는 “불상”이나 된 듯 말없이 앉아만 있다. 고요 가운데 념원을 태운다. 기도하는 “불상”이 된다. 앉은 내 엉덩이에 영의 무게가 고인다면 보람도 느끼련만 그건 장담 못하겠다. 회당에서 예배 드릴 때에는 노래하고 노래 듣는 순서 이외에는 대체로 “불상”같이 앉아 있다. 내 영에 무게를 더해주는 알찬 혼으로 익어가기 위해서다.

일본 사람은 “다루마”(達磨)를 좋아한다. 그것도 불상의 일종이다. 아이들 말로 “오뚜기”다. 엉덩이가 동그랗게 돼서 조금 다쳐도 하느작 거린다. 그러나 결코 넘어지진 않는다. 안정감이 없어도 “자립”에는 자신이 있다는 자세다. 일본족속다운 “다루마상”(達磨大帥) 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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