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8일 화요일

[범용기 제4권] (12) 상한 갈대 – 오염을 숨쉰다

[범용기 제4권] (12) 상한 갈대 – 오염을 숨쉰다


며칠 전에 서울 다녀온 젊은 친구를 만나 서울 인상을 물어봤다.

“서울은 마치 자기 허벅다리 젖가슴 살점을 뜯어 얼굴에 붙이고 인두질한 여인의 얼굴 같더군요.”

“얼굴은 그럴사하니까, 긴 치마로 하느작 거릴땐 제법 미인 같은데 해수욕장에는 못갈 팔자던데요.”

아닌게 아니라, 복판에서 키크기 경쟁에 아귀다툼하는 고층건물은 그럴사하다. 그러나 땅에 평토장으로 앉은 종로 바닥, 청계천 좌우, 특히 그 하류 서민촌은 억망이다. 여름철에 그 언저리를 다니려면 숨이 절반쯤 밖에 마셔지지 않는다. 코로 청계천 개굴창을 마시는 느낌이다. 눈이 아리고 코에 염증이 생기고 기관지염이 기침과 담을 들쑤신다.

서울이란 원래가 옴폭한 기마 속 같은 고장이다. 무악재, 인왕산, 백운대, 남산, 불암산 등등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그러니만큼 거기에 공장이 섞여 앉으면 “스모그”가 그 속에서 맴돌기 마련이다.

서울은 주택지로만 써야 할 곳이다. 그런데, 남산 변두리, 삼각지, 용산, 동대문 안팍 할 것 없이 별에 별 공장이 뒤섞여 앉아 그 안령한 “독까스”(?)를 뱉는다.

필자가 살던 수유리만 해도 아침에 6, 7년 전에는 북창을 열면 백운대와 그 기슭이 갖 목욕한 선녀같이 예쁘고 빛스러웠다. 거기에 보드랍고 얇은 흰 구름이 살작 아랫도리를 가리기나 하며는 진짜 선녀라도 하강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년쯤 후부터는 늙은이 눈동자처럼 뿌엿키만하고 생기도 아름다움도 증발해 버렸다. 그게 “스모그”라고 한다.

이제는 우이동까지도 그 영역에 들었고 의정부도 마찬가지가 됐다.

공장은 한강 건너 영등포에서 인천까지의 공기가 잘 빠지는 평야나 서해안 아산만 지대에 국한시켜도 나무랄 사람이 없을 것 – 오히려 현명한 위정자라고 칭찬할지 모른다.

“청”과 “탁”을 가릴줄 모르면 맑던 것이 더러워지고 더러워지면 썩는다. 그러면 시민 모두가 코로 구정물을 마셔야 한다.

[1980.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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