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8일 화요일

[범용기 제4권] (11) 상한 갈대 – 몰두

[범용기 제4권] (11) 상한 갈대 – 몰두


1956년에던가 미국선교사단 총무인 아담스가 나와 김정준을 디너에 초청했다. 식후에 그는 나와 단독으로 말하고 싶다했다.

“당신만 그만두면 한국교회는 평온무사할텐데 사면하실 수 없을까요?”

“한신 이사회에 말해 보시구려! 이사회에서 그만두라면 그만두지요!” 했다.

“그러면 틀렸지요!” 한다. 단념한다는 뜻이었다 … 사실, “한신대”는 총회 직속 신학교였기에 이사는 각 노회에서 선출된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다. 노회에도 보수와 개혁 두 세력이 진영을 달리하고 있었지만 선출된 이사로 보면 언제나 개혁파 인사가 우세였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나를 몰아내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각 지방교회에서도 두 갈래의 논쟁이 벌어졌다. 그래서 나는 신학적 계몽 때문에 순강에 바뻤고 논쟁의 대열에서는 이쪽이 언제나 우세였다. 신학논쟁에서의 열세는 그들로 하여금 교권주의로서의 우세를 전략화하게 했다. 그들은 소위 정통교리라는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의 절대화와 아울러 교리옹호를 위한 “무한전술”을 노골화 했다. 정통교회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거짓증거든 부정부패든 정당화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대구에서 제36회 총회가 모였을 때, 이북피란교회를 정회원으로 들였다. 해방 이전에는 교회 수의 3분의 2가 황ㆍ평 두 도에 있었으므로 총회대표수도 전 총회원의 2/3가 황평 대표였다. 그러나 이남에 피란한 목사 장로들은 본적지역의 지교회를 상실했고, 지교회 없는 노회도 될 수 없으니만큼 본적지 노회로서의 총회대표 선출도 불가능한 처지였다. 그들이 총회대표가 되려면 이남 노회소속으로 이남노회에서 선출되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남 보수파 인사들과 미국 선교사들은 “선자리 없는 이북교회 목사, 장로들을 이남 총회의 정회원으로 등록하여” 당장에 총회원의 2/3 해당수를 확보했다. 그들은 “은혜갚음”으로서라도 “한신대” 토벌에 앞장서지 않을 수 없었다. 개혁파 총회원들은 논쟁의 불꽃을 튕겼고 그때 경기노회 총대의 하나였던 강원용은 당당 2시간에 걸친 사상변론의 웅변을 폈다. 장내는 숙연했다 한다. 그러나 총회에서는 기장방침대로 K의 목사직 박탈, 한신대 인정 취소, 한신대 졸업생의 교회위임 거부, 이미 목회중인 한신 졸업 목사의 노회로서의 재심사 등등을 의결했다. 방청석에서는 “빌라도의 법정이다”하고 함성을 올렸다. 장내가 소란하자 총회장은 “고토”를 버리고 도망쳤다. 그러나 “한신”은 죽지 않았다. 더 큰 생명으로 무덤에서 부활했다.

* * * *

그후, 나는 루터나 된 것같이 분투했다. 언제 봄이 왔다 갔는지, 남산에 진달래가 언제 피었다가 졌는지, 어느새 해변가에 여름이 왔다 갔는지, 어느 때 눈이 쌓였다가 녹았는지도 모르고 새로 탄생한 개혁교회 보육에 몰두, 10년을 논쟁과 순방으로 지냈다. 진짜 여념없는 “몰아의 골돌”이었다. 조그마한 한국교회의 개혁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재와 싸워 자유한국을 쟁취한다는 일은 몇십년의 씨름일지도 모른다. “통일”은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좌절이나 포기 따위를 염두에 얼신거리게 해서는 안된다. 총력전, 장기전을 최후 승리에까지 밀고 나가자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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