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0일 화요일

[범용기 제4권] (6) 序章 - 원형(Prototype) - 크리스챤의 원형

[범용기 제4권] (6) 序章 - 원형(Prototype) - 크리스챤의 원형


(2) 크리스챤의 원형

크리스챤이 타락했다고들 한다. 그것 역시 크리스챤으로서의 “원형”에서 미끄러져 추락했다는 뜻일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챤이 “크리스챤격”을 회복한다는 것은 그 원형을 되찾고 터전삼이 삶을 재건해 가는 것을 말함일 것이다.

그 원형이 어떤 것이냐? 원래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은 초대교회(사도시대) 때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붙은 별명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때 거기 교인들이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 어느 누구에게나 만날 때 인사말부터 그리스도의 평안을 묻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했기 때문에 “저것들은 그리스도쟁이다” 하고 놀려댔던 것이 신자들의 자랑스런 이름으로 정립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수가 메시아 즉 그리스도”란 것을 믿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즉 “크리스챤”이다. 따라서 크리스챤이란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이란 뜻이 된다. 그들의 제일차 충성 대상은 그리스도다. 우리의 삶이란 엄숙한 결단과 선택의 연속인데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크리스챤의 결단이어야 한단 말이다. 크리스챤이 세상에서 대접받을 때에는 결단 이전에 벌써 이 “별명”을 자랑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챤이 푸대접 받고 숨잖으면 생존마저 약속하기 어려울 경우에는 문제가 아주 달라진다. 이 때에는 목숨걸고 결단하며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크리스챤의 “탄생고”라 하겠다. 수에 있어서 “다수”를 기대할 수도 물론 없다. 영원한 “마이노리티”가 그들의 운명이며 동시에 사명이다. 가령 우리의 현존사회 구조 속에서 획득욕, 지배욕, 명예욕 등등을 비웃어 버리고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옳으심을 증언하기 위해서 가정의 보금자리 대신에 감옥을 택하고 자유여행 대신에 “연행”을 택하고 “고관”대신에 “죄수”됨을 택한다면 그것은 초대 로마교인들이 “카타콤”을 택한 것보다 더 어려운 선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형(形)인 경우, 그 “원형”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심판할 것이다.

[198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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