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0일 화요일

[범용기 제4권] (3) 序章 - “雜草(잡초)”의 단상

[범용기 제4권] (3) 序章 - “雜草(잡초)”의 단상


수필, 수상, 단상 등등의 문학형식은 대략 같은 부족이라 하겠다.

수필이란 것은 생각나는대로 단숨에 내리 갈기는 것이어서 때로는 “넌픽션 소설” 같기도 하고 “수기”(手記) 같기도 하다. 일인칭으로 엮었을 때에는 “자서전” 비슷하기도 하다. 국문학 전문가로서 시조 연구에 제일인자로 치부하는 서울대학 이병기 박사의 글은 개인 일기체로 엮어졌지만, 담담하고 무사(無私)하여 독자를 매혹한다. 한약재 사거 봉천 갔던 얘기, 어느 친구, 만나러 갔던 얘기, 그 친구는 그럴 수 없는 사인데도 돈량이나 벌었노라고 뚱뚱보가 되어 오만스레 깔보던 얘기 담박하면서도 감초 맛이 달콤한 일기체 단장들이다.

한신대 제4회 졸업생 임인수 같은 사람은 내향적이고 마음 밑바닥까지 침묵의 “아비스”가 가라앉은 사람이었다. 원래가 시인으로 태어난 “혼”이었지만 너무 가난해서 마감에는 “술”로 화풀이하다가 청춘에 가버린 문학의 수난자였다. 내게 대한 신의는 언제나 진실했고 지금 L.A.에 사는 김형식 씨가 첨부터 알아주는 문학친구였다. 그의 “시”도 단장적인 그리스도 찬가로 엮어졌다.

이병기 박사의 “논문”도 국문학사에서 빼지 못할 명편들이겠지만, 논문의 장황함은 학문의 자랑일지 몰라도 번거롭고 어려워서 민중에게는 기가 질린다.

그런데 “단상”은 우선 길지가 않다. “이런 글쯤이야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두 장(章) 나도 읽을 수 있어!”

둘째로 제목과 내용이 장마다 다르다. “장”마다 딴얘기다. 그런데 그 속에 “가시”가 있어서 따끔, 맘을 찌른다. 생활의 권태가 진력나던 참이라, 따끔 찔리는 가시를 환영한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셋째로, 따끔한 바늘 끝에 미래가 찍혀 나온다. 가령 병원에서 간장 검사를 한다하자, 간장이란, 묵중해서 아파도 아프다하질 않는다. 아픈 줄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갈구리 달린 주사바늘을 간장에 찔러 넣어 빽 돌려서 빼낸다. 간장조직이 갈구리에 묻어나온다. 그 작은 단편이 간장진단에 결론을 내린다. 치료 방법도 고안된다.

“단상”은 짧지만 매운데가 있고 긴 논문보다 따끔한 요소가 생동한다.

그래서 “단상”을 쓰기 시작했다.

“짧은 글”이라면 본국 있을 때에도 썼다. “제3일”에 발표된 것만도 51편이나 된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지식인의 의식구조를 찌르는 내용이 거의 전부였다. 이제는 더 내려가 “Grass Root”에 뿌리를 내린다. 말하자면 “잡초문학”이다. 그래서 이번 단상집은 그것만으로 독립시킬 작정이다. 나도 “잡초”라는 “의식인”이기 때문에!

[1981.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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