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4일 수요일

[범용기 제3권] (223) 北美留記 第六年(1979) - 문재린 목사의 심경

[범용기 제3권] (223) 北美留記 第六年(1979) - 문재린 목사의 심경


4월 25일(수) - 오전 중에 교회 이목사 사무실에서 문재린 목사님과 이목사와 나 셋이 만나기로 했다.

시간이 닿아 갔다. 문목사님은 벌써 와 계셨다.

문 목사님은 합방 때에 “민영환”처럼 자결(自決)할 생각을 갖고 계신다. 전에도 여러 번 그런 심정을 말씀하셨다.

이 목사도 나도 반대했다.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그런 사건은 하나의 Psycho Case로 일소(一笑)에 부쳐버리고 만다. 하루 신문기사에 오를지 몰라도 그 이상 기억에 남기려하지 않는다”고 만류했다.

그보다도 성과야 있든 없든, 끝까지 한 가지, 즉 자유민주의 크리스찬 한국의 건설을 위해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다가, 못 이루고 가시더라도 다음 세대에 그 씨앗을 남겨 심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해 드렸다.

사실, 문재린 목사님이 곁엣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은 고민을 안고 계실 것이다.

익환과 동환 두 아드님이 감옥에 있다. 그들은 “닭의 입은 될지언정, 소엉덩짝은 안되련다”고 무지한 군인독재 정권에 항거한다.

그들은 죽으며 살고 죽어서 살고 죽어야 산다는 철학의 토양에 뿌리를 내렸다. 문 목사님은 아들들과 같이 죽고 싶었던 것이었다.

1979. 4. 29(일) - 토론토 한인연합교회 창립 12주년, 이상철 목사 근속 10주년 기념예배에 참석했다.

박재훈 박사의 지휘로 음악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