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4일 목요일

[범용기 제3권] (23) 15인 민주선언과 학생궐기 – 장준하의 100만인 서명운동

[범용기 제3권] (23) 15인 민주선언과 학생궐기 – 장준하의 100만인 서명운동


이 모임 명단에서도 장준하 이름은 빠졌다. 역시 민주통일당 최고위원 중 한 사람이란 것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함석헌, 계훈제 등도 장준하 이름을 명단에 넣으려고 제의했었으나 천관우가 적극 반대여서 퇴장소동에까지 격화되었었다.

장준하가 고요히 물러나갔다.

장준하가 민주개헌 백만인 서명운동을 발기했다. 이것은 원로회의 직후 장준하가 개인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천관우가 자기 집에서 함석헌과 나를 만찬에 초대했을 때 장준하가 먼저 천관우 집에 와서 백만인 서명운동에 서명해 달라고 했다. 우리는 물론 이의 없이 서명했다.

그런데 그 서명운동이 어느 정도까지만 진전하다가 현저하게 좌절되었다. 그것은 장준하 개인의 정치수단에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 취지서에 보면 발안자는 민주통일당 최고위원 장준하로 되어 있고 발기인 명단도 아무 것도 없었다. 발안자의 제의에 찬동한 서명자 명단이 무순으로 발표된 것 뿐이었다.

서명운동이 진척되지 않자 장준하는 우리 집에 찾아와서 사연을 말하고 상담했다. 그래서 그 취지서 문구를 얼마 고치고 장준하 이름을 맨 먼저 쓰되 ‘타이틀’은 빼고, 그 아래 열거되는 서명자들 중에서 약 30명을 발기인으로 하고 그들과 합석한 가운데서 기자회견을 하라고 해 뒀다. 그 30명 중에는 물론 함석헌, 김재준, 천관우 등의 이름이 들어있다.


그는 그렇게 했고 기자회견도 했지만, 그 자리에 나는 나가지 않았다.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왜 윤보선 씨 이름이 빠졌느냐”는 질문이 있었던 모양인데 장준하는 “그이는 전직 대통령이신데 원로로서의 위신상 박정희에게 ‘청원’하는 글에 서명을 청하기는 죄송스러워서 그랬다”는 뜻으로 대답했던 것이라 한다.

그런데 신문기자는 윤보선 씨를 고의로 제외한 것 같은 ‘뉴앙스’로 기사화했던 것이다. 그것이 윤보선 씨의 노여움을 샀다고 들었다. 사전에 윤보선 씨와 상의하지 않은 것은 장준하의 실수였다고 본다.

윤보선 씨는 말했다.

“그랬든 저랬든, 그런 중대한 국민운동을 전개하면서 내게도 알려야 할 것이 아닌가. 한 번 알리지도 않고서 기자들에게는 마치 내가 박정희 눈치보며 살기나 하는 사람인 것 같은 인상을 퍼뜨렸으니 그런 고이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전직 대통령이라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민주 개헌운동에 서명해야 할 것이 아니냐?” 했다고 들었다.

장준하는 외국기자들에게도 발표하고 그 자신의 선언문을 일본에 잠입시켜 일본에서 대대적으로 발표하게 했다고 한다.

어쨌든, 장준하의 백만인 서명운동은 다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대로 둔다면 한달 안에 백만명을 돌파할 기세였다. 학원과 교회에서 전적으로 협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은 장준하와 백기완을 구속했다.

바로 일주일 전에 발족한 민주원로회의에서는 장준하를 사무국장으로 선임했고 금후의 모든 재량권을 사무국장에게 맡긴다는 보장까지도 붙여 주었던 것이다.

장준하가 백만인 서명운동을 원로들에게 제의했더라면 으레 찬성을 받았을 것이고 원로들의 결의대로 사무국장이 집행하는 형식을 취했더라면 혼자서 액운을 떠멜 필요도 없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15인 민주선언 때에 의식적으로 자기 이름을 뺐었다는데 대한 심리적인 유감도 있었을 것이고 해서 이번에는 단독행위로 나선 것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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