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7일 목요일

[범용기 제2권] (81) 캐나다연합교회 예방과 그 후유증 – 캐나다연합교회 총회에서

[범용기 제2권] (81) 캐나다연합교회 예방과 그 후유증 – 캐나다연합교회 총회에서


1958년 9월 하순에 캐나다 연합교회 총회가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서 열렸다.

나는 그 총회에 친선사절(Fraternmal Deligate)로 왔으니 으레 가야한다.

사실, 내 성미로서는 승방수도(僧房修道) 같은데는 적응되기 쉬워도, 어떤 ‘무대인’(舞台人)으로서의 연출 같은데는 의욕도, 흥미도 재능도 타고난 것이 없다.

우선 수줍어서 말이 수월하게 솟구치지 않는다. 마개 막힌 ‘병’이랄까 –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고 입에까지 치솟질 않는다. 제스츄어도 싫고 목소리도 우렁차지 못하다.

‘플로어’ 연단 가까이 왼쪽 옆에 내 자리도 정해 있었다.

내가 내 자리를 비운 일은 없었다.

부처님 같이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 업는 것은 아니다. ‘정중동’(靜中動)이랄까, 무던히 동양적이다.

날고 뛰는 자기네들 대표가 자기네들 교회 일을 의논하는데,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는 딴 나라 사람이 참견할 계제도 아니라고 느꼈다. 영어도 어림없고 유머도 없다.

‘플로어’에서 ‘까이들라인’이 서로 분과토의가 여기저기서 열린다.

나는 ‘교회와 사회’ 분과위원회에 참여하도록 되어 있었다.

‘플로어’에서의 주요 의제는 ‘GI’에게서 태어난 혼혈아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과 함께, 그 애도 캐나다 시민으로 허락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플로어에서는 양론이 있어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대로 분과위원회에 넘겼다. 분과위원회에서도 찬성론과 신중론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래서 내 의견이 필요했던 것이란다.

사실, 총회측에서는 ‘입양’(入養)을 추진시킬 방침이었다. 그러나 ‘신중론’도 만만치 않았기에, 더 연구하라는 뜻으로 ‘분과위’에 넘긴 것이다.

나는 우선 신중론자의 주장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말한다.

“그 아이들이 캐나다에 입양되는 경우에 그들의 성장과정에서 자기들 ‘주체의식’(Self-Identity)의 불투명이 생기는 ‘컴플렉스’ 그리고 사회생활에서의 숨은 차별에서 생기는 불안과 불평등 등을 고려할 때, 오히려 한국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그애들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했다.

① 그 애들의 주체의식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은 ‘호모지니어스’한 단일민족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그 애들의 주체의식에 대한 도전은 더 심각할 것이다.
② 그 애들이 사회적 발전에 있어서는 캐나다 같은 일종의 ‘합중국’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자유개방사회’니만큼 각자의 능력대로 발전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교육받을 기회, 기술 습득과 취직 등등에 있어서 여기가 훨씬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입양’ 추진에 찬성한다…….

그들은 납득하는 것 같았다.

결국 그렇게 가결됐다.

* * *

그리고 총회 폐회 직전의 전체회의에서 회장은 나에게 인사겸 10분간의 연설을 하라고 했다.

나는 연설문을 우리말로 썼다. 그것을 한국 갔던 선교사들이 영역했다.

그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교회는 선교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선교’의 시대가 지났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다만 선교의 개념과 방법에 창의적인 재정리와 재고가 요청되는 것 뿐이다.
한국교회 자체도 선교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선교할 ‘고장’은 반드시 외국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다. 그 비용과 부담이 너무 벅차기 때문이다.
한국 안에도 복음이 증거되지 않은 고장이 많다.
전라도, 경상도 해안에 흩어진 크고 작은 섬들, 강원도 산골 – 거기 버림받은 못사는 백성, 도시 변두리 빈민촌 – 우리 바로 이웃에도 우리의 선교지구는 수두룩하다….
그리고 38도선은 미래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할 적격자를 뽑는 ‘시험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기독교와 공산주의와의 대결이다. 그러므로 세계적 공동체로서 기독교회는 총 연합하여 책임적인 관심을 거기에 집중시켜야 한다. 38도선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 특히 미래세계의 문제다….”

낭독조의 영어여서 자유스러운 ‘연설’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실수는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단상에서 총회장은, “영어를 그렇게 잘하면서 왜 활용하지 않았느냐?”하며 뜨겁게 악수했다. 그리고서 “나도 한국에 가보고 싶으니 초청해 달라”고 한다.

그런때에 ‘제스츄어’로서라도 “나는 총회장 ○○박사가 한국 방문하시는 영광을 약속받고 싶스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여 지금 초청합니다” 했어야 할 것이었는데, 너무 비외교적이었다는 것을 지금도 부끄럽게 생각한다.

어쨌든, 모두들 열심히 박수해 줬고 “참 좋았소!”하고 격려하는 사람들도 무던히 많았다. 한국갔던 젊은 선교사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는 그런 찬사는 여기 사람들의 ‘에티켓’이라는 생각에서 가벼운 감사로 대꾸했다.

총회가 끝나고 전원이 관광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쪼지앤 베이가 대서양에 합류하는 고장에 건설된 유명한 발전소였다. 기차로 가는데, 기차에는 ‘세면소’가 없었다. 어쩌다 정거장에 머물면 승객이 거의 전부가 뛰어내려 모두 ‘소방호수’ 든 ‘소방대원’이 된다.

나는, 일부러 나 만나기 위해 ‘오타와’까지 왔던 김익선과 반가운 친교를 나누었다.

그는 그때 ‘파인힐 신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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