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5일 화요일

[0464] 역사 참여의 문제와 우리의 실존 (1958년 3월)

역사 참여의 문제와 우리의 실존


《기독교사상》(1958년 3월)

[1] 역사에서의 유리와 역사에의 관심

역사란 인간 문화가 지어져 가고 있는 고장이니만치 문화의 창건과 유지에 열심 있는 사람들은 따라서 역사에 대하여도 관심이 크다. 한국의 수천 년 역사 기록을 볼지라도 한국의 선조들이 역사에 관심이 컸다는 것을 긍정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일본 등의 더 큰 지역과 나라들 사이에서 교량의 위치에 있는 한국이 그 끊임없는 불의의 침략에서 자신의 역사를 형성, 옹호, 발전해 나가려고 싸워 온 수난사는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의 그것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심각한 바가 있다. 임진왜란에서의 이 충무공 같은 이는 어느 야폭(野暴)한 침략적 소위 영웅들에 비할 바 아닌 인류 역사의 보석이라 하겠다.

나는 그러한 이가 유교의 전통에서 산출되었다는 데 우선 착안하고 싶다. 한국의 불교가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한국 역사의 조성에 씨가 되고 날이 된 것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불교의 역사 참여란 언제나 간접적인 것이었으며, 혹 직접적인 역할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여분, 또는 막간에서의 여광(餘光)이 아니었던가 느껴진다. 그것은 불교 자체의 성질상 그렇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현상을 비실재로 보고 단발이복(斷髮易服)하여 속세를 등지는 것으로 출발하는 불교가 진지하게 직접적으로 역사에 동참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교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 되는 윤리도덕의 법칙을 배우는 그 목표가 ‘치국평천하’에 있었다. 그들의 경전은 그대로 정치철학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이 역사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종교적, 도덕이념을 실천할 데가 없다는 것을 절실히 알고 있었다. 공자가 주유천하를 한 것은 불교의 설법이나 기독교의 전도와 똑같은 의미에서의 유세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에게 역사 운전의 핸들이 맡겨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하여 ‘누누연여상가지구(累累然如喪家之狗)’라는 야유까지 들은 일이 있다고 한다. 뜻을 얻지 못한 그는 그가 문무ㆍ주공의 시대에 나지 못했던 것을 한탄하며 ‘꿈에 주공을 보는 것’으로 낙을 삼으면서 『춘추』를 썼다.

이러한 것이 유교의 전통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있어서도 퇴계, 율곡 등의 학자가 그대로 당연히 역사의 ‘핸들러’가 되었으며 이 충무공 같은 이도 그러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속인들의 저급한 사환열(使宦熱)로 변하고, 관료 편중주의로 저락하여 마침내 국운의 몰락을 초래하였다는 것은 비극의 일막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들의 역사 참여에 있어서의 진지하고 직접적인 태도에는 경의를 표하지 아니할 수 없다.

돌이켜 우리는 기독교의 역사적 위치를 회고하여 보자. 아직도 한국에서의 기독교사는 일천하여 공죄를 속단할 수 없으나 신교 전래 70년의 기록에서 우리는 한국 최근세사에서의 기독교의 점경을 더듬을 수 있다. 기독교도 불교와 비슷하여 역사 참여의 과제에 있어서는 간접적인 태도와 감화밖에 끼치지 못하였다.

기독교에는 본래 이차원적인 요소가 있다. 하나님과 사람, 내세와 현세, 율법과 은혜, 하나님의 것과 가이사의 것들이 아주 별개로 분리되어 마니교에서와 같이 철저한 이원을 이룬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 적어도 타원형적인 이개 중심으로는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찬 생활에서는 언젠가 이 두 극성 사이에서의 긴장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꿈같은 이 세상을 취할 것 무어냐’ 하고 표연히 속세를 떠나는 센티멘트에서만 하나님이 참으로 가까워진다는 느낌도 사실이다. 육정을 극복하기 위한 단식의 결단에서 더 강한 정신력에 도달한다는 것도 경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불교에서와 같은 ‘해탈’을 전적으로 긍정할 심경은 안 생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셨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할 때에 크리스찬은 역사에의 향수를 또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는 중에 그들은 간접적인 공헌에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었다.

우리 한국에 소개된 기독교는 주로 정통주의 신학을 체계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들은 주로 반문화적이며 극히 타계적이어서, 현세생활은 그 자체에 의미 있다는 것보다도 영생, 속칭 천당 갈 준비과정 또는 지옥에의 유예기간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이러한 신학인 데다가 환경마저 일제의 전횡으로 한국인으로 역사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전적으로 막혀 버린 것이었다. ‘의붓아비 홍패 메고 춤추는’ 숙맥이 아닌 한, 한국 안에서 한국인이 할 일이라곤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울분하여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내세복락을 기대하여 기독교에 입교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이런 정경에서의 종교로서는 아까 말한 반문화적, 타계적인 정통주의 신학이 제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타계에의 동경을 더욱 자극시켜서 ‘천당의 가구와 지옥의 온도’까지도 미리 알아보려는 호기심을 가지게 하였다. 이런 말로가 신비와 기적을 미끼로 몽환을 팔아먹는 역사에서의 유리와 도피를 가져왔으며, 이런 것을 기독교적 신성(神聖)이라고 오인하게 한 것이다.

해방 후 정세는 변하였다. 역사의 핸들이 일인에게서부터 우리에게로 옮겨왔다. 우리는 무척 기뻤으나 준비와 자신이 되어 있지 않은 탓으로 어리둥절하였다. 그 틈을 타서 규격적으로 훈련받은 좌익이 오붓하게 추수해 버렸다. 원래 역사 참여를 직접적인 소명으로 여기지 않는 기독교가 이런 경우에 온전히 만들어진 프로를 가지고 착착 그 주어진 역사 과제들을 처리해 갈 준비가 되어 있을 리 없었으며, 그럴 용기도 배짱도 없었을 것은 사실이다. 기독교적 윤리라는 것이 설교도 되고 학습도 되었지만 그것은 성자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개인 도덕에 불과한 것이요, 사회나 국가를 경리하는 데는 구체적으로 적용할 생각도 못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랬자 어떤 국가나 사회기관에 들어가면 그 실제 처사에 있어서는 일반 사회인과 별 다를 것이 없으며, 좀 다른 점이 있다셈치더라도 오십보백보에 불과하였다. 좀 어수룩한 탓으로 남의 누명까지 뒤집어쓰는 경우는 있다고 들었다. 예외의 명사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는 그런 정도라는 말이다. 유교의 윤리를 세우기 위하여 오족을 진멸하는 줄 알면서 끝까지 불의와 저항하여 오차(五車)에 오리오리 찢겨 죽은 사육신의 기록 같은 것은 인간으로 역사에 바쳐진 가장 숭엄한 제물이었다 하겠다. 이런 데 비하면 기독교인으로서의 역사에 적용하는 윤리 행위란 보잘것없이 미약하다. 적어도 한국 역사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는 그런 것으로 되어 있다.

[2] 역사 참여의 문제

그러므로 이제부터 역사 참여의 문제를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요새 철학에서 흔히 말하는 것을 들으면 밑도 끝도 없이 현존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볼 때 거기서는 불가해, 무의미, 권태, 불안, 절망 등등의 결론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다. 나기 전의 ‘무’와 죽음의 ‘무’로 두 끝을 잘라 놓은 나뭇가지에 무슨 소망을 붙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런 인간들이 모여 붙어 조성하는 역사라는 그 자체에는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의문이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토피아주의란 인간성 자체의 근본적인 죄악성과 사멸성을 제거하지 못하는 한 불가능을 기도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장망성(將亡城)에서 일찌감치 손을 떼고 저세상 영생의 포구로 하루바삐 항해하는 것이 제격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도 무리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하여 역사 참여에 의심을 품게 되고 될 수 있으면 도피하거나 여세추이(與世推移)의 편한 길을 택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보는 대로 현존한 인간이란 밑도 끝도 없는 것이 아님과 동시에 역사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인간 역사 그 죄악사의 배후에 하나님의 구속사가 계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것이 신앙의 눈 없이는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건들로 나타나 있으며 계속하여 나타나고 있다. 구속사 – 데몬의 교착(交錯)된 드라마가 역사의 무대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나님ㆍ인간ㆍ악마’의 희곡을 인간이 연출한다. 데몬은 무의 세력으로 역사를 혼란과 파멸에 인도한다. 하나님은 구원의 경륜을 진행시킨다. 인간은 연출자로 움직인다.

그런데 역사의 무대에서 또 한번 아주 비상한 일이 일어났다.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내 친구 한 분이 미일전쟁 중 할리우드에서 갑자기 영화 주연배우로 나타난 일이 있다. 그 경위는 이러하다. 일본 군벌의 악덕을 규탄하는 영화를 이엄이엄 만들어내야 할 텐데 그 일본 장군 역을 중국인에게 시켜 보았으나 그 행동과 어조 등이 도무지 일인 같지를 않아서 골치였다. 회사에서 내 친구에게 그 장군 역 맡은 사람의 어조와 행동을 일식으로 훈련하는 일을 부탁하였다. 암만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해야 본래 생겨 먹기를 중국식으로 되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회사에서는 보다못해 내 친구더러 “아예, 네가 직접 네 손으로 해다오.” 해서 그가 배우로 출연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인간 역사의 배후에서 인간을 시켜 구원의 드라마를 연출하다가 어떤 비상시에 그 클라이맥스에서 그만 하나님 자신이 무대 위에 뛰어들어 가장 비장한 주역을 맡아 버렸다. 그것이 골고다의 그리스도였다. 동양 역사 가운데 은왕성탕(殷王成湯)의 기우제 이야기도 이런 사건의 비슷한 하나의 그림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역사가 단순히 인간들만의 밑도 끝도 없는 장난이 아님을 알았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우리 인간 역사 안에 돌입하여 지금도 연출되고 있다는 것을 보았고, 따라서 이 역사의 종국은 ‘무’의 승리가 아니라, 구원의 약속에서의 진행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사 참여란 또 하나의 불가능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요, 장망성에서의 무의미한 도로(徒勞)도 아니게 된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직접 극중인물로 죽음을 통한 비장한 실연을 하셨거늘, 우리가 어떻게 다만 관람자만으로 지낼 수 있겠는가? 누구든지 다 극중인물이 되어야 한다. 사건의 한가운데 서서 십자가의 도를 너 자신이 연출하라. 이것이 크리스찬으로서 오늘에 실존한다는 뜻이다. 관념론자와 같이 방관을 즐기고만 있으면서 실존할 수 없다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3] 역사의 부정과 역사의 창조

이리하여 기독교적 입장에서 우리는 역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다만 간접적, 여파적인 행위라도 좋다든지 그런 행위라야 한다든지 하는 지론을 존속시킬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면 역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마치 헤겔이 생각했다는 것과 같이 현존한 역사는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합리적 필연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정당화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저 ‘스타투스 쿠오’에 충실하며 가장 진실한 ‘예스 맨’이 되면 족하다고 생각할 것인가? 의식적으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분들이 많다. 교회 안에는 교회생활로서의 소요되는 규격들이 있으므로 거기에 충실하고 건전하게 복종함으로 말미암아 신임과 지위를 얻어가고, 국회에 들어가면 그 안에서의 관례와 행습에 명민하여 다른 사람들보다도 민첩하게 선거자금도 마련하고 지위도 상승시키고 해서 그 안에서 성공하고, 온유 겸손하여 상사에게는 고임을 받고, 그리하면 그것이 신자로서의 역사 참여를 옳게 나타낸 것인 줄 안다는 것이다. 소련 안에 있는 크리스찬들도 그런 태도로 그들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이중 윤리에 안심하고 지낼 수는 물론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밖에 무슨 길이 있는가? 그리스도의 행위에서 우리는 그가 십자가를 그의 전 생애의 혼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십자가는 가장 철저한 자기 부정을 의미한다. 아무리 고독해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때에는 은혜로운 고독이어서 진정한 부정이라 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고 절규하신 순간,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은 절대 고독의 경지에 떨어졌다. 십자가는 이렇게까지 철저한 자기 부정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런 경지에서도 그는 “내 아버지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하며 신앙으로 모험하였다. 이것이 죄인을 대신한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으며, 이것이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신성의 발로였다. 이 고비를 넘지 않고는 생명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역사가 자동적으로 무한 진전하여 천국이 되는 것도 아니며, 인간이 역사 안에서 그 종말의 구원소를 발견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 역사는 범죄의 기록이며, 따라서 그것은 구원자가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인간의 손에서 지어져 가고 있는 역사 자체에 무난히 순종하므로 얻어질 것이란 또 하나의 죄의 기록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찬이 역사에 대하는 태도란 언제든지 구속사적 입장과 성격 안에서 이 현실의 역사를 비판해야 하며 동시에 그 역사로 하여금 구원의 목표를 지향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이 비판과 지향에서 크리스찬은 십자가를 각오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세상이 자기와 같지 아니하므로 미워한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속사 없는 역사가 무의 운명에 해당한다면 그 운명적인 ‘무’를 일찌감치 구속사와 역사와의 사이에 이항시킴으로 구속사적 ‘플러스’를 만드는 것이 사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구속사적 입장에서 우리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살필 때 우리는 그야말로 구토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인간적 교만과 무지와 부패가 이사야가 본 그 당시의 유다와 같이 진실로 만신창이어서 머리에서 발꿈치까지 성한 데가 없음을 본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이것을 분개 하고 규탄하고 냉소하고 할 것인가, 아니면 흔히 있을 수 있는 폭력혁명을 꾸밀 것인가? 우리는 이런 실존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분개할 것도 없다. 그것은 역사가 죄의 기록임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6ㆍ25 때의 일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와병 중이었고, 남하할 모험성도 없고 해서 죽이면 죽지 하는 심보로 서울에 남아 있었다. 살던 집에 ‘역산’이라는 패를 붙이고 나가라고 쫓으니 할 수 없이 40리 밖 도농이라는 고요한 마을에 숨어 있었다. 9ㆍ28 때까지 나는 남하한 정부와 지도적 인사들에게 갸륵한 기대를 가지고 그 귀환을 눈이 헐도록 기다렸다. 이제 이렇게까지 심한 징계를 받았으니, 다시 한 번 환도를 허락해 주신다면 모두들 거듭난 사람같이 회오(悔悟)하리라. 그리고 돌아오는 날 만나는 사람마다 부둥켜안고 눈물로 반가워하며 그 전의 범죄적인 모든 생활에서 떠나 참 새 나라를 만들어 주리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자마자 도강파(渡江派)니 재경파(在京派)니 하면서 눈을 흘기고 불탄 자기 집 대신에 어느 누구의 것이라도 빼앗아 가져야겠다고 이웃을 모함하며 눈에 쌍 불을 켜고 주린 이리같이 설레발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는 그때 탄식과 함께 깨달은 바가 있었다. 역사는 결코 무슨 외부적 변혁이나 사변 때문에 그 범죄성에서 구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내가 이번 사변에서 더 잘될 무엇을 기대했다면 그것은 나 자신의 어리석음이었다고.

그러면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가 창조될 무슨 수가 없을까? 나는 역시 여기서도 해묵은 옛날이야기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즉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십자가의 도가 세상에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믿는 우리에게는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의미의 성구들이 우리에게 새 길을 시사해 준다. 속량의 길밖에 없다. 고요하고 어리석은 길이다. 남이 저지른 죄를 내가 대신 지고 그 사람을 살게 한다는 십자가의 길이 있을 뿐이다.가령 농촌이 이렇게 피폐해졌다. 그것은 대부분 행정 졸렬에서 왔으니 행정자의 책임이다 하고 비평만 할 것이 아니라 누구의 잘못이든 간에 나는 거기 들어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그들과 함께 고생을 나누며 최선의 친절 가운데서 생을 마치겠다고 한다면 어리석기는 하나 그 고차원적인 창조 능력은 결코 무시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검토하고 경제학적으로 따지고 정부에 건의하고 예산을 타내고, 소비조합을 만들고 농사개량을 실시하고……. 이런 운동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정말로 정상적인 농촌운동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니 복음이니 운운하는 꿈같은 로맨스로서 될 것이 무어냐고 말할 것이다. 전자가 물론 필요하다. 정상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과 후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나는 기계요, 다른 하나는 생명이다. 하나는 인간적 노력이요, 다른 하나는 신적 축복이다. 우리는 후자의 생명력 없이 전자의 효능화를 기대할 수 없다. 이것은 역사의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다 그러하다.

우리 한국에서도 죄로 죽을 ‘옛사람’, 즉 절망적인 인간 실존과 그 역사에서 새로운 인간 실존, 역사의 창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온전히 인간 이상의 다른 차원에서만 바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가 구속사에 호응하지 않는 한 아무 새로운 것도 있을 수 없다.

우리 한국의 크리스찬은 해방 이후 이상한 병에 걸렸다. 그것은 자유 진영의 제 우방이 기독교국이요,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부통령 이하 고위 지도자들 중에 신자가 무던히 많다는 것으로 해서 교회가 이 시대를 자기의 베개로 삼고 안면하는 수면병이다. 불신자나 그 어느 누구가 그 안면을 방해하면 노발대발하여 호통을 친다.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다. 한국은 아마도 그 반대면에서 제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미국에서 배워 온 것은 부잣집 자식의 호화판이다. 그래서 어쨌든 나 하나만이라도 미국의 생활수준에서 살아야겠다고 극성을 부린다. 그와 마찬 가지로 우리 한국의 신자들은 아직 한국 역사에 공헌한 바도 미약하며, 한국의 역사를 구속사에 맞추어 가려는 점에서도 아직 초보에 불과한데다가 기독교 윤리를 역사에 조형해 가는 데는 거의 착념도 못하고 있으면서, 벌써 우리 시대가 다 된 것같이 안면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무기로 속량 사회를 세워 나가며, 속량 윤리가 고요히 이 죄악사 가운데에 누룩같이 피어 들 수 있도록 하는 데서만 한국 민족에게서 새로운 형태의 인간 실존을 하나씩 둘씩 찾아볼 수 있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형일까 하는 것은 두고 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속에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역사 안에 임한다.” 운운하는 어구가 암시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묵상하면 근사(近似)한 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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