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2일 월요일

[범용기 제5권] (130) 輓章文記(만장문기) - 내 조카 ‘하용’에게

[범용기 제5권] (130) 輓章文記(만장문기) - 내 조카 ‘하용’에게

‘하용’ 조카를 여의고서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오! 하도 민감하니 넉두리라도 하는 것이지요.

한 옛날 중국의 ‘은’나라 폭군이었던 ‘주’(紂)를 ‘간’하다가 동쪽으로 피신했던 箕子(기자)의 기록이 생각나오. “폭군은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이란 얘기가 있는데 정말 그런가 어디 깨 봅시다.” 했다는 것이었오. ‘기자’는 도망쳐 동쪽 어느 지방에로 사라졌었다오. 조선에 건너와서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얘기도 있지만, 우리 국학자들 중에는 그렇게 믿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소.

‘은’나라가 망하고 궁궐터에 잡초가 무성했을 때 기자는 혼자 그리로 찾아갔었다오. 그야말로 심장에 구멍 뚫리는 슬픔이었오.

엉엉 울자니 어린애 같겠고, 소리업이 울자니 부녀자 같을 것이고, 그래서 ‘시’를 지어 읊었다고 했오.

조카님 가시니 내 심장에도 구멍이 뚫리는 것 같구려! 울어도 흐느껴도 시원할 것 없기에 이렇게 輓章(만장)을 쓰며 글 속에 내 ‘울음’을 담아 두는 거요.

조카님 보낸 편지 한 장 한 장 읽으며 그 속에서 조카님 소리를 듣고 조카님 모습을 보는거요.

조카님은 무얼 해도 믿음직했고 무얼 시켜도 알뜰하고 진실했오!

조카님 신촌서 개업했을 때에는 신촌 가면 조카님 병원에 들리는 것이 내 ‘낙’의 하나였오. 뒤에 반평쯤 밖에 안되는 온돌방이 따스했길래 춥고 피곤한 겨울이면 그 방에서 한 잠 자고 몸 녹이곤 했었지. 그러다가 집에 갈 때에는 꼭 택시를 불러 태워 보내곤 하던 것이 잊히지 않소.

내 환갑잔치 때에는 진공단으로 한복 일습(一襲)을 정성스레 마쳐서 마침 내가 거기 들린 것을 계기로 내 택시에 넣어 보냈었오. 나는 그때 한참 건망증이 심한 무렵이어서 수유리 사택에 내릴 때 그건 깜박 잊고 몸만 내려 집 현관까지 갔었오. 그때에사 불현 듯 생각나서 쫓아 나왔지만 택시는 뺑소니 친지 오래고, 택시 운전사 이름도 택시 번호도 모르니 되찾기는 틀렸다고 단념했오. 그건 조카님 정성도 들었지만, 조카 며느리 정옥의 정성어린 선물이었기에 너무 미안해서 말도 못하고 지냈었오. 잔치 날은 다가오는데 나는 다급해지기 시작했었오. 그래서 전화로 사정을 알렸잖았소. 그때 조카님 음성이 그렇게 침착하기 보드러울 수 없었던 것이 기억에 생생하오.

“그건 저희들 잘못이었습니다. 저희가 저희 손으로 들고가 뵙고 드려야 했을텐데, 바쁘다는 생각만 하고 버릇없이 어른께 ‘누’를 끼켜 드려서 죄송 죄송합니다.”

그 후에 조카님과 조카 며느리는 다시 한복 일습을 들고와서 환갑날 의젓한 옷차림으로 숱한 절을 받게 해 주었오.

조카님이 우리 두 늙은이를 위하여 충정은 보낸 편지 한줄 한 구절마다 피부에 스며드는 것이었오.

조카님은 총명하셨오. 하나 들으면 열을 안다는 옛말 그대로였오.

시국에 대한 판단도 예리하고 정확했다 하겠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진언도 정직하고 합리적인 것이었오.

정옥에게도 최후까지 최선을 다했고 많은 자녀들에게도 지혜로운 사랑으로 앞 길을 열어 독립하면서 협동하는 생활을 건설하게 했다고 보았오.

정옥이 우리집 할머니를 위하는 효성은 진실로 갸륵했오. 정옥은 인정의 화신(化身)이었다 해도 나무랄 사람이 없을거요. 그렇게 몸이 고달프고 숨을 몰아 쉬면서도 카나다 할머니가 추우실까 싶어, ‘스웨타’를 뜨다 뜨다 채 못 뜨고 그만 가셨더라오. 후일에 그 미완성 스웨타가 할머니 앞에 보내 왔을 때, 할머니는 그걸 가슴에 안고 진짜 울었다오. 지금도 그걸 ‘정옥’의 몸인양, 그대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오.

조카님이 일본 있을 때 일본 방문한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공사간 여러 가지 일이 얽혀서 그렇게 안 됐었오. 그래도 가까운 장래에 가긴 갈 것이므로 그때 만나면 조카님 처소에서 한달쯤 유련해도 좋으리라 생각했던 것이오.

그런데 일본행과 서독행이 한 프로에 째이게 되어 81년 3월말에사 일본에 가게 되었오. 그때는 벌써 정옥도, 조카님도 딴 세계에 옮기신 후였기에 조카닌 안 계신 일본이란, ‘이방’ 중의 ‘이방’이었다오. 삭막감 밖에 오는 것이 없었오.

이제 조카님 가신지도 5년이 지났구려! 모르긴 하겠오만, 늙은이들에게 주어진 시간도 오래진 아닐 것 같소.

전우주와도 엇바꿀 수 없다는 인간 생명이니 없어지진 않았을 거요. 언제 어디에서든가 또 만나겠지요!

그때까지 모두 모두 잘 있으시오.

먼저 가신 내 맏딸 정자,

내 조카 며느리 정옥.

내 조카 하용에게 1983. 2. “장공” 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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