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9일 금요일

[범용기 제5권] (117) 동경에서 – 正月(정월)의 月夜祭(월야제)

[범용기 제5권] (117) 동경에서 – 正月(정월)의 月夜祭(월야제)

내 나이 여섯이나 일곱 살때 두만강가 6진의 하나인 경흥에서 정월 대보름날 ‘달마중’ 하던 생각이 난다.

바로 집 뒷산 머리에서 광주리만한 보름달이 떠오른다. 하늘은 얼음장 같이 맑다. 보름의 오곡밥 먹고 자정쯤에 온 식구가 앞뜨락에 달마중을 나간다. 자기 그림자를 밟으면 불결하대서 식구 하나하나가 달 앞에 똑바로 선다. 왼쪽 어깨너머로 윷가락 넷을 세 번 던진다. 윷이 나온대로 윷점을 친다. 그런따위 참서류(讖書類)를 베낀 커다란 황지(黃紙) 책이 있다. 윷가락 숫자에 따라 그 황지책을 뒤져 일년 신수를 점친다. 내 윷점은 언제나 내게 행운을 일러주는 것이었다. 흉괘가 나왔다 해도 그것 때문에 우울해지는 식구는 없었다. 진짜로 윷점을 믿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윷놀이의 하나로 해 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해의 풍흉, 가뭄과 장마와 홍수, 농사의 잘잘못을 점치는 일도 한다. 울타리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열두 개 꺾어다가 거기에 불을 붙인다. 열두 개는 열두 달을 의미한다. 그 나뭇가지 중에는 잘 타는 놈도 있고 타다 꺼진 놈, 타기도 전에 꺼진 놈 등등이 있다. 셋째 것이 잘 탔으면 3월은 가물겠다 한다. 여덟째 놈이 안 탔으면 8월은 장마가 지겠다 한다. 그것도 Fun으로 하는 일이지만 한 옛날 月夜歲時祭(월야세시제)의 유산이 아니었던가 싶다.

‘7성기도’란 것도 있었다. 이것은 아낙네들이 주례자가 된다. 찰시루떡을 정성스레 쪄서 지붕 용마루 위에 놓고 주부되는 어머니가 하늘의 북두칠성을 향하여 손을 비비며 일곱 번 절한다. 그리고서는 그 떡 광주리를 내려다가 제물 나누듯 맛있게 나누어 먹는다.

‘산천제’란 것도 있었다. 동리마다 주봉으로 인정된 산봉우리가 있다. 물줄기들이 골짜기를 따라 흐른다. 합하여 꽤 큰 개울이 된다. 그리고 개울바닥의 어느 특정된 고목이 ‘신목’(神木)으로 전승된다. 산천제는 그 신목 밑에서 거행된다. 집집마다 지정된 제물을 갖고 그 신목 밑에 보인다. 상당히 복잡한 제전이 거행된다. 나는 우리집 몫의 제물 도시락을 갖고 간다. 아버님이 ‘제관’으로 ‘제문’을 읽고 다양한 제사행위를 지도한다. 서라 앉으라, 4읍3배 하라 등등이었다.

그런 제전이 끝나면 ‘제문’은 불에 사른다. 그리고 제물들은 나누어 먹는다. 제주도 나누어 마신다. 돼지고기를 안주로 나눈다. 모두 거나해져서 기분 좋게 잡담하다 헤어진다. 일본의 正月(정월) “달의 집” 태우기라든지 “부여”의 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라든지에 비하면 제전으로서는 너무 젊잖다. 그러나 ‘근엄’하여 ‘유모어’가 깨진 유교사회에서는 이 정도의 원시 제전이라도 남아 있다는 것이 다행이 아닐 수 없겠다.

그리고 설날에 아이들은 신 새벽에 문을 열고 밖을 향해 ‘움머’, ‘꿀꿀’, ‘꼬꾜오’, ‘컹컹’ 등 집짐승 소리를 외치라고 한다. 가축들이 병 없이 번성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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