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9일 금요일

[범용기 제5권] (111) 동경에서 – 來客(내객)도 있고

[범용기 제5권] (111) 동경에서 – 來客(내객)도 있고

9월 21일(월) - 흐리고 비 오는 날이다.

2:00 PM에 고규환 목사, 홍순관 목사 안내로 내 방에 찾아와서 약 2시간 그의 고문당하던 얘기를 피력했다. 예장 장로로서 고문치상 제1호다.

‘주리’로 종아리 뼈가 부러지고 돌에 박아 정신착란이 생기게 하고 – 신앙없이는 견뎌낼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그는 그 당시에 예장총회 기관지인 기독공보 편집인이었다. 아무 죄도 없는 ‘죄인’이 됐던 것이다.

KCIA에서는 그가 골절된 줄 알자, 연지동 5가에 있는 이용설 병원 분실에 팽개치고 갔다.

나도 그때 그 병원에 그를 방문하고 기도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는 그 후에 목사가 됐다.

지금 그는 그때의 고문실상을 폭로하며 각 교회에 간증선교 여행을 계속한다. 하루에 세 번 이상 집회한다.

박희민 목사가 모셔 갔다.

이 목사와 신자가 많은 식품을 사 갖고 왔다. 인철ㆍ혜원도 김치꺼리와 김치 속 넣는 각종 양념을 갖고 왔다.

경용ㆍ효순과 그 식구들도 식품들을 갖고 왔다.

9월 26일(토) - 오후에 ‘연금’ 부부의 안내로 N.Y.의 문동환 박사가 내방했다. 약 1시간 반 얘기했다.

9월 28일(월) - 시내 민주한인목사화 사모님들이 이상철 목사 집에 모여 문동환 환영 Party를 열었다. 이 목사가 Apt.에 들러 나도 픽업해 갔다.

문동환 박사의 고난과 ‘한’(恨)의 신학을 들었다.

의를 위해 핍박박는 동안에 주어지는 은혜의 경험은 ‘조개의 진주’라고 느껴진다.

9월 30일(수) - 나의 거실 겸 서재의 정리는 오늘로 완료했다. Orderly하게 되어 기분이 좋다.

4:00 PM에 이상철 목사가 처와 나를 모시고 Weston에 간다. 우리 일행(이 목사 부부, 장공 부부, 문동환)을 태워 갖고 정동석ㆍ민혜기 집에 갔다. 거기에 “한신대” 동문들이, 같은 동창인 문동환 박사 환영 Party를 연 것이었다.

만찬을 마치고 문 박사의 수난 경위와 고난 실화를 들었다. 모두 경청한다.

10:00 PM에 집에 왔다.

10월 4일(일) - 연합교회에서 예배했다. 문동환 박사가 ‘한’을 풀어 준다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예배 후에 혜원 집에 가서 저녁 먹고 다시 교회에 가서 ‘동환’의 설교를 들었다. ‘恨(한)’의 신학 속편이다.

11:00 PM에 이 목사 차로 Apt.에 왔다.

10월 5일(월) - 문동환 박사는 오전 중에 ‘디트로이’에 갔다. 거기서 집회하고 N.Y.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10월 6일(화) - 애굽의 사다트 대통령이 과격파 회교도들(?)에게 암살됐단다.

10월 10일(토) - 3:00 PM에 조홍래라는 이름의 주 토론토 한국영사가 왔다. KCIA 책임 영사라고 들었다. 7월에 부임했는데 인사드리러 왔노라 한다.

나는 말했다. 독재 군인 정치에는 아무 것도 기대하기 어렵고 믿을 수도 없다. 광주학살 사건부터 시작한 그의 집권태도가 ‘무법’ 자체인데, 누가 믿겠느냐? 국제여론도 악화했다.

그는 말했다. “광주사변은 변명할 여지가 없지만, 그것도 과장선전이 많습니다. 지금 많이 개선됐고, 더욱 개선될 것입니다.”

“개인 자유와 인권 존엄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데, 나는 ‘개선’ 됐다는 뜻을 이해할 수 없는데요!”

“지금은 38선이 군사대결선이고, ‘평화선’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남침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극상했자 ‘휴전선’ 밖에 될 수 없고 따라서 군사정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7년 임기완료될 때에는 신헌법에 의하여 반드시 현정권은 퇴진하고 민주정부가 서게 될 것입니다. 그건 전 대통령께서 누누이 언명한 것이니만큼 반드시 지켜줄줄 믿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지금부터 자유민주정치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성의를 보여야지요. 그런데 정치인도 아닌 종교지도자들까지 박해하는 것은 ‘민주’보다도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닌가 싶소이다.”

“두고 보십시오. 그 분은 꼭 그대로 하실 것입니다.”

그는 ‘고대’ 출신이라는데 사실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

10월 12일(월) - Vancouver의 반병섭 목사가 박재훈 장로와 함께 내방했다. 나의 휘호를 간청한다.

담화무진(無盡)이다. 9:00 PM에 기도하고 작별했다.

10월 13일(화) - “범용기” 제1권이 반입됐다.

글씨를 쓴다. 반병섭 목사를 위해 2폭, 김용옥 박사를 위해 2폭, 신복균ㆍ송민자 부부 박사님들을 위해 각 1폭씩 썼다. 윤박사 부부는 혜원을 통하여 부탁해 왔던 것이다.

10월 15일(목) - “범용기” 제2권 집필한다.

쓰다가 피곤하면 은용ㆍ행강이 갖다 준 Lawn Chair를 창가에 놓고 잠시 눕는다.

10월 17일(토) - 이건일, 이인선 내외분이 선물 들고 문안왔었다. 지금은 Store를 경영한다고 했다.

혜원, 지영, 지영의 고모 문안왔었다.

10월 20일(화) - 박재훈 박사와 함께 교외에 풍림(楓林) 탐승을 떠났다. 일기가음산하고 춥고 바람이 세다.

Notingham 방면으로 달렸다. 단풍은 원래 제대로 물들지 못한 데다가 바람이 닥쳐서 나무들은 겨울의 나목(裸木)이 되어 엉성하다.

백년 묵은 식당이라는 나이자랑으로 한몫보는 음식점에서 오랜지쥬스와 스카취수프를 주문했다. 수프는 짠 것이 특색이었다. 곧 돌아왔다.

10월 22일(목) - 하령 생일인데 하준의 생일까지 겸하여 Birthday Party를 “아빠ㆍ엄마”가 열어줬다.

“할아버지”는 돈 20불씩 선물로 줬다. 아직 돈 값을 잘 모르기 때문에 선물로 뭔가를 사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만 선물 고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도 들고 교통수단도 없고 해서다.

10월 26일(월) - 김경재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완상, 서광선, 현영학 등이 미국 와서 교수직을 갖고 정착할 공산이 크다고 했다.

10월 28일(수) - 서울 ‘한신대’ 구약교수 장일선이 자기 저서 ‘구약세계의 문학’ 한 권을 증정해왔다.

장일선은 ‘한신’ 제2대 졸업생이다. 그의 부친인 장형일도 한신 출신이고 장일선도 한신 출신이다.

10월 30일(금) - 간염은 원상태로 되 가는 것 같다. 위가 부풀고 식욕도 없고 몸이 부어 오른다.

10월 31일(토) - 종일 ‘범용기’ 제2권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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