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1일 목요일

[범용기 제5권] (78) 北美留記(북미유기) 第8年(제8년) 1981 – 자이온에 가다

[범용기 제5권] (78) 北美留記(북미유기) 第8年(제8년) 1981 – 자이온에 가다

3월 10일(화) - 아침 7시쯤 떠나 구 장로 내외분과 함게 Zion, 그랜드캐년에도 달린다. 한국인 주유소, 한국인 ‘매캐닉’에게 차의 건강진단을 철저하게 받았다.

“이 정도면 차는 문제 없습니다.”

“음식도 문제 없습니다.”

구 권사는 자상한 주부였다.

모두 맘 든든하게 달린다. L.A. 시가지를 벗어나자마자 황토밭 사막이다. 가담가담 바위산더미 틈에 동굴들이 있어 젊은이들 ‘캠핑’장이 마련돼있다. 말랐는지 살았는지 요량이 안 가는 사막 특유의 덤부살이가 빈틈없이 벌판을 덮었다.

‘저 덤부사리에 하느님 불꽃이 타 오른다면, 영락없이 시내산의 ‘모세’도 나타날 것 같은데…….’

혼자 생각하는 내 민족의 꿈이 내 혼을 쑤신다.

가도가도 황야다. 남가주, 유타주의 귀퉁이, 네바다주, 네부라스카주, 콜로라도주, 아리조나주 등등을 꿰뚫어 외가닥 포장국도를 신나게 달린다.

저 멀리 서쪽(?) ‘구름 가’랄까, 하늘지경이랄까에 하늘보다 더 푸른, 그리고 ‘만년설’(萬年雪) 덮어쓴 ‘록키’가 어슴프레 보인다. 동쪽은 툭 터져 한정이 없다.

“이 벌판에 한반도가 몇 개나 들어갈까?”

구 권사가 느닷없이 뇌까린다. 나도 속으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짜 실제성과 성실성 있는 도산 선생 같은 애국자가 개간회사라도 조직해 갖고, 한국 농민들을 이민시켜 개간하는대로 개간된 땅 절반을 갖게 하고 나무 심어 숲을 기르고 숲속에 주택 짓고, 목장에 소 먹이고…… 도산 선생처럼 교양학교 만들어 의식구조를 고치고…… 한다면…….”

사실 거기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 정부가 만든 모범정도 있었다. 소나무가 늠름하게 하늘을 뚫을 푸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국 농민이 벼농사라도 한다며는…… 살 걱정 없겠는데……

요는 ‘공간’ 문제다. 공간이 좁아서 마음도 옹졸해진다. 우리 민족에게 공간을 줘라……!

“실현성 없는 생각은 망상(妄想)이고, 실현성 없는 행동은 망동(妄動)이다”하고 말한다. 그러나 실현성 없는데서 실현하고야 마는 창조력이 그 민족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때에는 ‘망상’도 ‘망동’도 없다. 모두가 창조의 소재(素材)로 ‘푸른 숲’을 기른다.

밖으로 모험하는 민족이 발전한다. ‘발전’하려면 ‘적’(敵)이 많다. 자기끼리 서로 결쟁이 생기고 약소자들의 복수도 당연하다. 그래서 ‘조심’하라 경계한다. 조심(操心)이란 말을 앵글로 색슨족은 ‘Look out’이라고 한다. 밖을 보라는 뜻이다. 외향적이다. 한국말로서는 ‘내 마음을 조절하라’는 뜻일테니까 ‘Look in’이 된다. 내향적이다. 그래서 ‘해외발전’이랄만한 역사가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이민’이 권장되어야 한다. 한국민족에게는 ‘이민’이 그대로 Exodus(출애굽)이다. 탈출이 그대로 가나안이다.

이제는 ‘광야’도 거의 끝나는 것 같았다.

내가 뒷자리를 독차지하고 길게 누워 이런 공상에 잠겼을 때 앞에 차아(嵯峨)한 바위산(山)이 울쑥불쑥 엇물려, 아주 붙어버린성 싶은 협곡 속에 깊이 숨는다. ‘바위산’이라지만 바위 하나가 산봉우리 하나다. 우리는 지금 Zion에 들어서는 것이다.

중국의 ‘함곡관’이 이런 걸까? 양자강이 무산(巫山) 협곡 밑바닥을 미친 듯 뒤집히며 달리고 길이라곤 벼랑밑 오솔길 한 가닥, “한 사내가 길목 요새를 지키면 일만 병정이 어쩌지 못한다”(一夫當關萬夫莫開)는, 일곱 살 때 통감(通鑑)에서 읽은 글이 떠 오른다.

어쨌든 이제부터는 ‘자이온’이다. 이 Zion 계곡이란 ‘그랜드캐년’의 북쪽 가장자리여서 말하자면 한 속이다. 이 계곡형성에 대한 지질학자들의 책들도 많다.

태고적, 약 6천만년 전에는 해면(海面)과 거의 비슷한 평야였다. 그런데 바다의 어마어마한 압력 때문에 육지가 밀려 올라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2억년을 계속했다. 약 3백만년 동안은 바다가 들이닥쳤다 밀렸다 하면서 싸우다가 땅이 불끈 밀려 솟으면서 갈라졌다. 그래서 강이 생기고 호수도 생겼다.

바닷 속에 있던 몇 천만톤짜리 모래 바위가 지금도 그때의 화석(Fosil)들을 안고 있다.

그리고 보니 그 바위산들 꼭대기가 모두 싹둑 잘린 것 같이 평평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이 평화를 흐르던 ‘콜로라도강’이 계곡에 찾아들어 물골을 잡았다.

바위를 깨물며 뒤번지며 2백만년에 1천피트 평균으로 깊이를 팠다. 2백 17마일 넓이, 1마일 깊이다.

이 고장에 역사 이전의 원시인이 살았었는데 Paiute 인디언족이 들어오기 전에 어디론가 가버리고 Paiute 인디언족이 그 자리에 정착했다고 한다.

백인족으로서는 도미니컨파에 속한 스페인 신부 일행이 1776년에 이 지방을 탐방(探訪)했었으나 근본자료가 될 만한 기록은 남기지 못했고, 다시 50년이 지난 1826년쯤에 Jededian Smith란 모험꾼이 16인의 대원을 거느리고 모피장사 관계로 이 고장에 드나들었으나 이 지방의 탐승기록으로서는 별로 쓸만한 것을 남긴바 없다.

그후부터는 사냥꾼들과 모피장수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1843~44년 사이에 Captain John C. Fremont가 자세한 관찰과 탐험으로 신빙할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하며 그의 인도로 모르몬 종파의 대부대가 1850년에 지금의 Salt Lake 호반에 이동,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내가 동화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어딘가 동화 아닌 역사 이전 세계가 눈앞에 남아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산마다 드높은 꼭대기는 평평하고, 꼭 설계도에 따라 쌓아올린 것 같은 성채가 둘러쌓이고, 거기에 드나들 수 있는 네모 장방형 성문이 두부모 베어낸 듯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꼭대기가 평평한 것은 바다에 밀려 솟구친 탓으로 바닷물에 눌렸을 적 평편할 밖에 없던대로 치솟아서 그랬달 수 있겠는데, 그래도 역사 이전의 거인족이 여기서 살잖았었나 하는 ‘동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은지라…… 그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의 용사더라…”(창세기 6:1~4).

말하자면 홍수 이전의 ‘거인족’이 여기서 살면서 힘을 믿고 살육을 마음대로 저지르다가 망했다는 본 고장이 아닐까 하는 동화의 세계 말이다.

여기는 그랜드캐년 북쪽 끝인데 우리는 남쪽으로 간다는 게 길을 잘못들어 갔던 길을 되돌아 원점에 왔다. 그럭저럭 해는 저물고 밤에 잘 모르는 길을 더듬기는 위험이라기보다도 무모에 가깝기에 결국 ‘Best-Bestern Motel’에서 광야의 안면을 즐겼다. 점심, 저녁 모두 구 권사가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때웠다.

이튿날인 3월 11일(수)에는 영락없이 그랜드캐년엘 갔다. 계곡은 더 좁고 깊어 콜로라도 강이 꽉 찼다.

지옥을 흐르는 생명강이랄까?

그랜드캐년의 명성은 ‘후버댐’에 있다.

후버 대통령 때 시작해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때에 완공하고 이에 관련된 모든 것을 법제화했다. F. 루스벨트는 전대통령 후버에게 그 명예를 돌린 것이라 하겠다.

미국은 ‘세계제일’을 자랑한다. 이 후버댐과 그 발전소가 역시 ‘세계제일’이란다.

(1) 댐으로 말한다면 :

높이 – 726.4 피트
길이 – 1,244 피트(물이 찼을 때)
두께 – 45 피트(수면높이), 660피트(밑바닥)
용수량 – 3억 7천 5백만 ㎦

(2) 저수지

Mead란 이름의 이 저수지만으로, 물이 찼을 때 길이가 1백 10마일
용수량 : 2천 8백 53만 7천 Acre feet
제일 깊은 데가 5백 feet.

(3) 발전소

발전량 – 1백 34만 4천 8백 KWT
발전기 – 17개

발전소는 주로 절벽을 까내고 거기 새둥우리처럼 매달려 있었다.

건설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몇 번이고 홍수에 밀려 망가졌었다.

이 댐이 생기기 전, 콜로라도 강은 농민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1922년에 이 강과 관련된 주(州)들과 북맥시코 대표까지 합석하여 콜로라도 강 조약을 체결했다. 이 물을 컨트롤하자, 그리고 한 방울이라도 쓸데없이 흘려버리지 말자! 했다.

그래서 지금에는 농지관개만이 아니라 음료수, 유원지, 휴양소, 청년수련소로도 가장 애용되며, 1937년 공개된 이후 관광과 시찰여행객만도 1천 9백만명이 오갔고 일 년에 60만명 이상이 관광객으로 드나든다.

낚시터로 안성맞춤이다. 뽀트 타기도 자유다. 물을 더럽히지 않는다는 공덕심은 아직도 미국 대중의 미덕으로 남은 것 같다.

거기서 잡은 ‘트라우트’ 중에는 어른의 키만큼 큰 것이 있었다 한다. 무거운 놈을 겨우 들고 찍은 사진도 있었다.

자연자원을 인간생활에 맘껏 이용하면서도 그 자연자체의 아름다움을 파괴하지 않는 민족은 자연과 창조주가 함께 기뻐할 것이 아닐까?

우리는 뽀트 탈 생각을 꺼버리고 집 길로 돌아섰다. 달리다가 Las Vegas쯤에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도박장에 들어가 빠징코를 돌렸다.

나는 한 번에 25전씩 넣고 돌리고 돌린다. 한참 후에 돈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다. 계속 마저 헤아려보니 50불이 넘었다. 이만 움켜쥐고 가자고 했다.

2백불을 잃었노라는 구 장로는 내게 와서 “도박이란 잃는 재미로 하는게지 그까짓 50불쯤이 뭐냐”면서 나더러 자꾸 넣어 돌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감 ‘Quarter’를 깨끗이 털고 빈손으로 거리를 나왔다.

거기는 난장판인줄 알았었는데 경관 입회하에 질서정연했다.

나오니 낙조가 하늘 가장자리를 불태우고 있었다. 가까운 모텔에 들까 했었는데 나선김에 집까지 달리잔다. 잠시 멈추고 ‘라스베가스’의 낙조를 사진에 잡아넣자고 했지만 구 장로는 들은체만체 마구 달린다. 할 수 없어 달리는 차 안에서 찍었지만 사진은 근사하게 나왔다.

덕분에 밤 열두 시 정각에 구 장로 댁에 왔다.

날짜는 3월12일 밤 12시 30분이다. 따스한 전기담요 침대가 피곤을 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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