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일 화요일

[범용기 제5권] (14) 北美留記(북미유기) 第七年(제7년) 1980 – 잠시 에드몬톤에

[범용기 제5권] (14) 北美留記(북미유기) 第七年(제7년) 1980 – 잠시 에드몬톤에

시내 한인연합교회 사무실에서 ‘에드몬톤’의 김형도 목사를 만났다.

80년 3월 1일에 에드몬톤 한인회와 교회와의 합동으로 3일간에 걸친 3ㆍ1절기념 강연회를 열기로 했는데 나를 강사로 초청한다는 것이었다.

2월 27일에 토론토를 떠나 3월 7일에 돌아오도록 항공티켓까지 사 준다. ‘아리랑’ 한식점에서 잡채밥을 먹고 작별했다.

나는 에드몬톤, 갈가리 지방을 잊을 수 없다. 우선은 거기가 원시 동양족의 집단생활구역이란 것 때문이고, 요새 와서는 우리 한인의 집단 이주 본거지란 것 때문이다.

약 20년 전만 해도 대학생 한 두 사람 밖에 한인은 없었다. 석유붐이 한인을 모이게 했다. 나는 에드몬톤 한인사회를 맘에 두고 산다.

날짜로 본다면 오랜 후일에나 나올 기록이겠지만, 지난 얘기니까 여기에 이어 적는다.

나는 예정된 날자대로 에드몬톤에 갔다. 의례 내 양딸인 ‘분옥’이네에 간다. 분옥의 남편인 이재형은 에드몬톤 한인교회 목사로 있다. 그는 제주도 출신의 수재로 ‘한신대’에 최후수 성적으로 입학하여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서울의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일하다가 독일장학생으로 추천되어, 캐나다에 올 때까지 서독의 함부르크에 있었다. 언젠가는 대성(大成)할 것이다. 지금도 ‘박사’지만 그런 티를 안 낸다.

하루는 이규숙 장로외 김형도 목사가 얼어붙은 북국의 호수에 겨울낚시를 내린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해는 구름 아래 밝아도 열은 식었다. 바람이 미동한다. 그러나 얼음섞인 북극의 ‘횟바람’이다. 나는 얼음판 위에 세운 자동차 안에 ‘히터’를 피우고 털외투를 감고 앓아있다.

두 분은 회전착혈기로 두꺼운 얼음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낚시를 내린다. ‘꼴드피쉬’가 문다. 두 시간 동안에 김형도는 다섯 마리, 김규숙 장로는 한 마리를 나꿨다. 그러나 그 한 마리가 큼직한 놈이어서 체면이 섰다.

모두 분옥의 손에 들어와 생선찌개가 됐다. 신선(神仙)이나 먹을 별미였다.

나의 3ㆍ1절 강연도, 재형교회에서의 친교도 기록에 남길 염치가 없는 범상한 것이었지만, 빙호(氷湖)의 겨울낚시는 속세를 벗은 희귀한 풍류였다.

재형 목사는 창설기의 교회정돈과 건설에 열중이었고 ‘분옥’은 가정에서 세 자녀의 어머니로, 살림의 주부로, 교회로서는 목사 부인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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