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일 월요일

[범용기 제5권] (1) 北美留記(북미유기) 第七年(제7년) 1980 – 설날과 그 언저리

[범용기 제5권] (1) 北美留記(북미유기) 第七年(제7년) 1980 – 설날과 그 언저리

1980년 1월 1일 – 옛날 중국식으로 말한다면 호지(胡地) 땅이겠지만, 자손들이 옮겨와 뿌리밖고 대대로 살면 그게 내 땅이다.

오늘은 ‘설’날이라 일가친척이 다 모인다. 한복차림, 큰절이 의젓하다. 일년에 한번 한국의 ‘뿌리’(Root)를 몸으로 가꾸려는 것이다. 적어도 6천년 ‘인연’이다.

Edmonton의 이제형 박사와 분옥이 ‘세배전화’를 걸어왔다.

TV로 아마존강 상류 밀림 속의 원시인 생활상을 보았다. ‘다큐멘터리’다. 완전 나부(裸婦)와 나남(裸男)이 서로 부끄러움을 모른다.

‘낙원생활’이랄까? 그러나 마술사와 벽귀무(辟鬼舞)가 지배하는 미신사회는 새 문화의 발전과 창조능력을 마취시킨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미신’이 그들을 밀림과 장강(長江)에 폐쇄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높은 윤리를 본질로 하지 않은 원시종교는 그 신봉자를 본래의 원시상태에 유폐시킨다. 종교는 ‘아편’이 된다.

그러나 부단히 개혁해 가는 종교는 인간갱신과 사회개혁의 Dynamics가 되어 도덕적 영적으로 향상 전진시키는 창조성을 발휘시킨다.

서울의 관용과 정의, 그리고 손녀 명은이 외롭겠다고 전화를 걸었다. 정희는 교회에 가고 관용이 받는다. 귀에 익은 음성이고 말씨다.

할머니는 모닝싸이드 종합병원에 입원한 대로다. 아이들과 함께 ‘할머니’를 병원에 방문했다.

‘링겔’병도 치워버렸고 식사도 보통 환자와 같고 위도 별고 없어 며칠 안에 퇴원되리라고 한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Thornclliffe의 인철ㆍ혜원이 거처하는 아파트에 들렀다.

아이들과 함께 지영이 할머니에게 새배했다. 불란서산 포도주 한잔, 세초의 ‘도소주’로서는 고급이다.

명절때마다 나는 울적하다. 분출직전의 분화구 같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어쨌든 무언가를 어떻게나 ‘발산’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면 상당히 거친 단어들이 불쑥 치민다. 그렇다고 장검을 휘두르며 결투할 용기도 없다. 한다면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나 읊조릴까!

‘풍류’에서 ‘자유’를 즐긴다. 그러나 도연명에게는 울타리 밑에 황국(黃菊)이 핀 오막살이라도 ‘내’ 집이란 것이 있었는데 내게는 바람 타고 구름 따라, ‘방랑’할 황야(荒野) 밖에 없다.

신선같이 구름속 깊은 산에 숨어 살던 옛 은사(隱士)들이 부럽지만, 지금의 정치망 속에는 숨을 고장이 없다.

나는 연묵(硯墨)을 앞에 놓고 글씨를 쓴다.

여러 곳에서 신년 휘호(揮毫)를 청해왔기 때문이다. 설익은 서예라도 그걸 흉내내면 마음 속 사념(邪念)이 사라진다.

‘空’(공)에 가까운 마음가짐이 된다.

붓끝에서 흘러나오는 ‘藝’(예)의 妙香(묘향)이 신비하다. 일찍 서도(書道)라도 제대로 닦았더라면! 하고 아쉰 마음이 되기도 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