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1일 금요일

[범용기 제4권] (87) 野花園餘錄(其四) - 한국여인의 성숙한 낭만

[범용기 제4권] (87) 野花園餘錄(其四) - 한국여인의 성숙한 낭만

중국 당나라 말기의 ‘詩’(시)집 변두리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雲影薄(운영박) 草初濟(초초제) 花又洛(화우락) 蒸雙雙(증쌍쌍)”

내 여덟살 때, 우리 집에는 망명가는 한말지사들이 며칠씩 유숙하다 가는 일이 많았다.

아래 적은 글은 그 어느 분에게서 들은 구절이다.

어떤 글 잘하는 과년된 아가씨가 양반집 열세살짜리 ‘꼬마에게’ 아내로 주어졌다. ‘꼬마’ 신랑은 아직 ‘꼬마 서생’(書生)이다. 학업이 늘고 자라서 장원급제할 때까지는 앞길이 멀다.

‘신부’ 아가씨는 꼬마 남편에게 절간에 가서 공부에 전력하라고 권했다. 그래서 ‘꼬마는’ 절간에 간다. 떠나기 임박하여 신부는 글 한 구절 써 준다.

“白鷗飛(백구비) 白鷗飛(백구비) 沙千里(사천리) 波萬項(파만항)” 이에 맞춰 對句(대구)를 지을 수 있을 때까지 절에 있으라는 것이었다.

‘꼬마’는 어서 속히 신부인 아내 품에 안기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나 그럴싸한 ‘댓구’는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날 은빛 보름달이 절 뜨락에 호수처럼 맑고 잔잔한 밤이었다. 옆에 장미꽃 한송이가 달에 비추어 아름답다. 꼬마는 얼결에 춤추며 좋아한다. 같이 있던 ‘중’ 녀석이 웬일이냐고 묻는다. 꼬마는 사연을 얘기하고 자작시를 읊는다.

“杜鷗啼(두구제) 杜鷗(두구) 月三更啼(월삼경제) 花一枝(화일지)”

이제는 아내품에 안길 수 있겠다고 장담한 순간 꼬마는 중에게 맞아 죽었다. 그리고 중은 단숨에 꼬마의 ‘신방’에 뛰어 갔다.

‘신방’ 문을 흔들었다. 네게 준 ‘숙제’를 풀었으니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꼬마’의 시를 외였다. ‘신부’는 문살틈으로 ‘손을 드리밀어 보라고 했다.

중은 손을 드리밀었다. 신부는 품에서 ‘장도’를 꺼내 중의 손을 문설주에 못 박았다. 그리고 자결했다. 두견새 우는 밤, 삼경에 꽃 한가지만 남아 살 수는 없었다. 살려면 흰 갈매기 되어 모래밭 천리에 만겹 물결을 울며 울며 날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글귀가 “溫飛卽”(온비즉)…의 그것과 같은데서 떠오른 기억이다. 전완길 씨의 “한국의 여속”에도 수록돼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재료 출처는 모르겠다. 그러나 얼마나 “成熟”(성숙)한 낭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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