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4일 금요일

[범용기 제4권] (84) 野花園餘錄(其四) - 병원 창가에서

[범용기 제4권] (84) 野花園餘錄(其四) - 병원 창가에서

내 방에는 두 침대가 놓여 있다. 밝은 창가 침대가 내꺼란다.

출입 ‘도어’ 들어서자 있는 침대에는 65세 노인이 벌써부터 들어와 있었다.

그는 뭔가 혼자 중얼거리며 쉴새없이 방안을 서성댄다. 가담가담 ‘민요시’ 비슷한 구절들도 외인다. 몇 주일 지나도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무던히 외로운 사나인갑다.

어느날 나는 물었다.

“노인장 살던 본국은 어디오?”

“우크라이나지요.”

“자녀는 없소?”

“나는 외톨이로 40년 가까이 여기 와 있소. 그러나 우크라이나에는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수십명이 있소!”

“그럼 왜 그리로 안 가시오?”

“그건 안되지요! 나는 20대에 소련병정으로 뽑혀, 폴랜드 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웠지요. 전쟁이 뒤죽박죽이 된 복새틈을 타서 동남쪽으로 한없이 걸었더니 중국 농촌에 왔더군요. 중국 농민틈에 끼어 농사일을 했지요. 중국 사람들은 참말 훌륭해요! 그런데 거기서도 차츰 공산당이 판치길래 뺑소니쳐 온다는게 여기까지 온거요. 나는 공산당은 질색이오. 농민을 굶겨죽이고 죄없는 사람을 무더기로 학살하고! 지금이라도 내가 자식들께로 간다면 당장 늙은 모가지가 쌍동 날아날거요!”

그는 외로운 유랑민이다. 혼자 중얼거리더니 모두들 반쯤 돈 사람 취급이다. 여러 군데 대수술을 치루고 몸 ‘컨디션’도 엉망인 것 같았다. 그래도 ‘고독’이 ‘질병’보다는 더 괴로운 모양이다.

하루, 그는 주섬주섬 양복을 차려입고, 의사도 간호원도 몰래 나가버렸다.

공원 옆 의자에라도 앉아, 활짝 트인 잔디밭을 ‘우크라이나 농촌’인양 바라보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가, 나간 침대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폴추기스 늙은 신사가 들어왔다. 그는 풍채 좋고 점잖아 보였다. 다 큰 아들, 그중에는 사위도 섞였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네 사람 장정이 모시고 들어와 모든 절차를 끝내고서 마치 ‘Fire Place’에나 둘러앉은 듯 오순도순 얘기가 많다. 그러나 내게는 ‘바벨’이다. 처음에는 병원특허(?)를 맡았는지 직장 갈 때, 들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들리고, 면회시간 끝날 시간이면 미련없이 간다. ‘어머니’냥 싶은 뚱뚱한 노파가 식탁시중을 든다. 화목한 대가족임에 틀림없다.

나도 여기에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남 못잖게 많은데! 하고 기다려진다. 묘하게도 오늘따라 온다던 식구도 못 왔다. 내가 이제는 외로운 ‘우크라이나’ 늙은이 구실을 맡았나 싶었다.

[1981.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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