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0일 월요일

[범용기 제4권] (62) 細語錄(세어록) - 개나발

[범용기 제4권] (62) 細語錄(세어록) - 개나발

‘총력전’이니 ‘공동전선’이니 하는 ‘슬로건’은 2차대전 때에 귀아프게 듣고, 입아프게 뇌까렸었다.

반독재 민주운동하는 동지들이 국내에서 말하고 글쓰고 끌려가고 얻어맞고 유치장이 하숙집이 되고 감옥이 여관노릇 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해외동지들은 맘 아파서 안절부절했다. 우리가 할 일이 여기도 있다며는 그거라도 해야 하겠다. 할 일이 무엇일까? 국내사실과 사정을 국외교포들과 자유진영 나라들, 특히 미국, 캐나다 등 큰 나라들에게 알리고 호소하고 비판하고 타이르는 일이다. 그리고 ‘국가 이익’ 보다도 ‘국가 정의’를 앞세우느라고 예언자들처럼 선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일을 하노라고 해왔다.

둘째로, 여기는 그래도 좀 넉넉히 산다는 나라니만큼 월급장이 푼돈이나마 정성껏 털어서 다만 몇백불씩이라도 재정적으로 돕자는 맘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아무래도 자유언론사회니만큼 발언에 조심성이 덜하다. 독재정권에 대한 욕지거리도 무지하게 거세다. 그러는 동안에 “독재와 인권유린은 이북도 마찬가진데 왜 이남만 같고 야단이냐? 암만해도 색깔이 수상하다”는 따위 비방이 역습한다. 그렇잖아도 ‘반공국시’를 내세운 독재자는 자기 미운 사람은 모조리 ‘빨갱이’로 덮어씌워 잡는 판인데 국내동지 처지도 고려해서 말하라고 원망쪼의 기별이 온다. 그래서 이남도 이북도 똑 같이 비판 대상에 올렸다.

그럴려면, 제절로 ‘통일’과 ‘민주’를 동시에 다룰 밖에 없게 된다. 민주화는 민주통일을 위한 행진이다. 통일은 민주화를 향한 행군이다. 이것이 제3의 차원에서 합의되어야 둘 다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민중민주주의적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통일민족국가를 염원한다. 다시 말해서 개인자유와 사회정의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Korea 민족통일국가를 세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의 독재정권 밑에서는 ‘통일’을 말하면 ‘용공’, 친공, 이적행위, 나아가서는 ‘이북스파이’로 조작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당신을 5분 동안에 공산당으로 걸어넘길 수 있다는 것을 아시우?” 한다. 기성도표에 맞추면 된다. 거기에 굽신굽신 맞아들지 않으면 ‘고문’이다.

그런데 국외동지들은 ‘나이브’할 정도로 통일문제, 이북인사들과의 접촉문제 등등을 다루려 한다.

“국내사람들 처지를 생각지 않고”, “크소리 좀 작작치시오”, “아무소리해도 괜찮은 곳에서 큰소리쳐도 그거이 이 국내사람 잡는 구실로 쓰여진다는 것 모를리 없잖소?”, “개나발 불지 마소!”

그런데 요새는 국내에 소리 없으니 공동전선이라는 국외도 잠잠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개나발”이라도 불어야 하지 않을까?

“총력전” 의식이 파벌, 또는 분업을 포섭하는 더 큰 테두리도 뚜렷하게 그어져야 하겠다.

[1980.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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