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4일 화요일

[범용기 제4권] (43) 내 백성 내 민족 – 뿌리ㆍ강ㆍ바다

[범용기 제4권] (43) 내 백성 내 민족 – 뿌리ㆍ강ㆍ바다

뿌리가 물 위에 떠도는 풀을 “부평초” 또는 “개구리밥”이라고 한다. 그것도 뿌리기는 하다. 그 “뿌리”로 먹이를 빨아들여 살기도 한다.

그러나 땅에 닿아 흙 속에 파고 들어 깊게 내리박히는 “뿌리”는 아니다. 결국 “떠돌이”로 그러다 만다. 백년 천년 깊고 넓게 땅 속에 뻗치고 퍼지는 뿌리만이 아름들이 거목으로 하늘을 만지고 구름을 스친다.

강이 장강, 대하가 되려면 그 물줄기가 멀고 그 지류가 많아야 한다. 그 중에는 맑은 시내도 있겠지만 흙탕물도 있다. 받아들이는데 그리 까다롭지가 않다.

바다는 천하의 물이란 물은 무조건 받아 들인다. 들어오는 물은 제멋대로다. 싱겁기도 하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바다는 짜다. 결국 모두 짜다. 이민 받는 나라들의 “바다” 같은 도량이 요청된다.

이민이나 피난민은 부평초 신세다. 자칫하면 “개구리밥”일지 모른다. 그러므로 악착같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뿌리가 뭔가? 그 민족의 역사다. 우리 민족은 한국역사란 토양에 5천년 뿌리를 박고 살았다. 이 뿌리를 업신여기고 스스로 부평초가 되는데서 자신의 Identity를 상실한다. 우리 민족은 “떠돌이”가 아니다. “떠돌이” 민족도 자기 민족의 Identity를 가진다. 더 단결된 주체성일지 모른다.

“주체성”과 “게토”와는 같지 않다. 그러나 자칫하면 엇갈리기 쉽다. 친교와 이웃의식이 얕으면 감정적으로 “베타”가 된다. 악순환이 계속한다. 그래서 이민, 특히 동양이민 배척법안이 제출되기도 했었다.

그런 경우에 배척이나 소외 되기는 싫다. 대한민국임을 스스로 경멸한다. 그러나 타고 난 Mask가 스스로를 광고한다. 부모를 원망해도 별 수가 없다. 차라리 자기에게 정직하라.

“나는 한국사람이다”, “나는 한국민족으로서의 ‘인권’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다. 아무도 나의 ‘인간’됨을 짓밟을 권리는 없다. 그 대신에 나도 이(異)민족을 배척하거나 멸시하지 않는다. 다같이 이 나라 ‘시민’으로서 이 나라에 대한 의무를 다하려 한다.”

언어의 문제도 있다. 한국 이민은 제2세 쯤에서 한국말을 못하는 것이 거의 전부인 것 같다. 우리 모두 한국민족이라면 한국말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언어는 Means of Communication만이 아니라, 민족혼의 ‘전승’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한 폴랜드 신사를 만난 일이 있다. 그의 조상은 약 150년 전에 캐나다에 이민 와서 지금 자기는 그 선조의 5대손이라 했다. 공용어는 물론 영어와 불어지만, 가정에서는 의례 폴랜드어를 상용어로 쓴다고 했다. 어린애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민족역사의 뿌리가 단단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조금만 힘쓰면 어디서나 ‘혼’이 ‘혼’을 부른다. 그래서 같은 ‘바다’에서도 ‘해류’(海流)를 달리한다. 그 해류를 따라, 그 해류에 사는 억만 ‘어족’이 같이 흐르며 산다. 바다는 그것을 막지 않는다.

[1979.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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