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4일 화요일

[범용기 제4권] (37) 내 백성 내 민족 – 진달래 國花論

[범용기 제4권] (37) 내 백성 내 민족 – 진달래 國花論

나라마다 “국화”란 것이 있다. 일본의 “사꾸라”는 너무 설쳐서 “나라꽃”이라기 보다도 일본 기녀(妓女)의 성장을 연상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무궁화”를 국화로 했다. 어떤 경로로 그렇게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런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나라 꽃”이라면 적어도 아래의 몇 가지 조건은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① 그 나라 어느 지방에서나 살아 꽃을 피워야 한다.② 국민 누구나가 좋아하는 꽃이어야 한다.③ 그 꽃에 독이 없어야 한다. 아이들이 꽃잎을 먹어도 쓰지 않고 탈이 안나야 한다는 말이다.④ 꽃이 예쁘면서도 강해야 한다.⑤ 될 수 있으면 이른 봄, 눈이 녹자마자 피는 꽃이기를 바란다. 생명력이 심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⑥ 아무리 천대받고, 잘리고, 그 고장이 그늘지고 빼빼마른 흙이라해도 싱싱하게 다시 자라 퍼지는 꽃나무여야 한다.

대략 이런 조건들을 염두에 두고 볼 때 무궁화는 함경북도에서는 못 산다. 서울 이남에도 그리 흔한 축이 아니다.

그리고 꽃이 약해 보인다. 이른 아침에 피었다가 해가 뜨자 얼이 빠지고 저녁녘에는 맥이 없어 땅에 쓰러진다. “하루살이” 꽃이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보면 또 어제만큼 가득 핀다. 그렇게 대를 이어 늦은 가을까지 계속한다. 기간은 길어도 “드라마”는 신난 고비가 없다는 게 우리 민족사와 비슷해서 “나라 꽃”에 뽑혔는지도 모르겠다. 이유를 따져서가 아니라, 이심전심으로 말이다.

그러나 진달래는 위의 열거한 조건들에 모두 맞는다.

① 전라도 다도해와 제주도에서부터 함경북도나 만주에까지 진달래는 “내 고향 여기로세”다. ② 국민 누구도 진달래 싫다는 사람은 없다. ‘소월’의 “진달래 꽃”에 가슴 설레잖는 ‘우리’는 없을 것이다. ③ 진달래꽃에는 독이 없다. 아이들이 뜯어먹고 어른들은 꽃잎을 섞어 “화전”을 부쳐 술안주에 흥겨워하며 자작 시 “화전”을 읊는다. ④ 예쁘면서도 무섭게 끈질긴 생명이다. 무지한 나무꾼들이 해마다 송두리째 잘라간다. 그래도 봄이 오면 어느 “남은 백성”이 얇은 가지에 꽃을 피운다. 근년에 “입산금지” 조처 때문에 많이 나아지기는 했다지만 전에는 서울을 두룬 산들이 소나무 뿐이어서 집집마다 각쟁이로 솔잎을 긁어 갔었다. 소나무 밑에는 진달래 나무가 고아같이 일년을 자라 꽃몽우리를 배태한다. 나무꾼들은 “땔감으로 솔잎에 비길소냐”고 신나서 베어간다. 그랬는대도 이듬해 봄에 소면 소나무 밑은 어디서나 진달래가 연분홍 옷자락을 편다. 그 압박과 학대와 살육을 이기고, 강하게 담대하게 살아퍼지는 생명력을 우리는 예쁜 진달래에서 본다. ⑤ 진달래는 이른 봄 눈이 녹기가 무섭게 핀다. 봄 무대에 첫 출연자는 진달래다. 비슷하게 서두는 것이 노란 울타리꽃일게고, 늦꽃, 붓꽃, 목련, 라일락, 살구꽃, 복사꽃 등등이 신록 직전을 꾸민다. 어쨌든, 나는 무궁화보다도 진달래를 우리나라 꽃으로 추천하고 싶다. 위에 적은대로, 추천 이유는 그럴 듯 하잖은가? 나무꾼들이 낫질만 못하게 해도 진달래는 훤칠한 키에 풍요한 꽃을 자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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