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7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100) 野花園餘錄(其四) - 虛心(허심) 유재기 목사

[범용기 제4권] (100) 野花園餘錄(其四) - 虛心(허심) 유재기 목사

유재기 목사의 ‘호’는 ‘허심’이다. 그의 꿈은 한국 ‘농촌진흥’이었다. 그의 ‘빈 마음’에는 한국농촌의 현실이 Panorama로 나타난다. 일제 강점기부터 그는 한국농민의 짐을 나눠지고 숨가쁘게 걸었다. 쌀은 총독부에서 걷어간다. ‘보리 고개’를 넘기 전에 ‘절량농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굶는다. ‘허심’은 이 절량농민에게 뭔가를 주려고 서울바닥을 헤맨다. ‘해방’이 되자 그의 꿈은 부풀었다.

숱한 적산가옥들을 접수했다. 농촌운동의 재원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심은 그리 순진하지 않았다. ‘동지’라고 믿던 ‘친구’들이 자기 재산으로 빼어돌렸다. 그는 맘이 상했다. 그는 영락동에 있는 허주레한 목조건물에 드러누웠다. 그것도 물론 접수한 적산 중의 하나다. 부인과 자녀들이 고생을 나눈다. ‘허심’은 심장충격으로 의식을 잃었다. 내게도 소식이 전해졌기에 달려갔다. 의식은 회복됐다. 여전히 밝고 맑은 얼굴에 그의 특유한 공소를 터뜨린다. 며칠 후에 충격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마감 순간이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여전했다. 얼마 후에 그는 갔다. 장례식에는 친구와 동역자와 농민대표 수백 명이 모여왔다. 함태영 옹이 식을 진행시켰다. 그리고 ‘운구’한다. 수십명이 ‘관’을 붙들고 울며 따른다. 동네 사람들도 구경삼아 나왔다.

“저 사람이 뭐길래 저렇게들 야단이야?”

그들에게는 어느 가난뱅이 못난이로만 보였던 것이다.

‘영구’는 한강 건너 그가 심혈을 쏟은 어느 농촌 낮은 언덕에 내렸다. 다른 묘소는 가까이에 없었다. ‘성분’하고 비석을 세웠다.

“농촌운동의 선구자 허심 유재기 목사 여기에 누웠다”라고 새겼다.

후일에 바로 그 언덕 기슭에 공업단지가 생겼다. 농촌은 파괴됐고 ‘허심’의 유택이 아직도 거기 있는지 모르겠다.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그는 낭만적인 시정의 사람이었다. 그는 ‘시정’으로 농민을 사랑했다. 그러나 ‘선구자’였음에는 틀림없겠다.

[1975]

댓글 1개:

  1. 역사에 거의 알려지지 않고... 극히 일부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는 인물들이 많이 있다... 그는 그를 기억하는 일부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가면서 잊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아간 그들의 삶은... 결코 잊혀질 수 없다...

    그것이 잊혀진다면... 십자가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이 희생의 삶이고... 남을 도우는 삶이고... 십자가의 삶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영원한 부활의 삶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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