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27일 목요일

[범용기 제4권] (99) 野花園餘錄(其四) - 松都(송도)

[범용기 제4권] (99) 野花園餘錄(其四) - 松都(송도)

‘송도’는 ‘개성’(開成)이라는 이름보다 훨씬 ‘뉴앙스’가 짙다. ‘송악’(松嶽)이 진산(鎭山)이겠지만, 서울의 ‘북악’처럼 우악스레 내리닥치지는 않았다. 좀 멀지감치 떨어져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나는 여러 번 송도에 들렀었다. 한번은 거기서 ‘박연폭포’까지 걸은 일도 있다.

도읍의 판국은 작아도 차분했다. 남대문이 남아 있다. 규모가 작다.

* * *

‘송도’에서는 ‘만월대’가 ‘눈동자’랄까. 아무리 둔해도 ‘감회’없이 거닐 수 없는 궁궐터다. 일인들은 고적보존에 성실한 습성이 있다. 그래서 기와, 벽돌, 섬돌, 주춧돌 등등이 ‘파편의 황야’로 5백년을 잠자고 있었다. 어릴 때 들은 ‘한시’ 한 구절이 저절로 떠 오른다. 논산 기생이 만월대를 보며 지은 즉흥시다.

論山佳妓過松京(논산가기과송경)
滿月台空水繞城(만월대공수요성)
繁華三百年前事(번화삼백년전사)
畵人靑山杜宇聲(화인청산두우성)

논산의 예쁜 기녀 송경에 들렀네
만월대는 비었고 물만 둘러 흐르네
삼백년전 번화 얘기 어디서 들을까
모두 모두 푸른 산 두견새 소리로세. (직역)

* * *

‘선죽교’ 다리목 ‘정포은’의 비각에 순례한다. 비서이 눈물로 젖어 잇는 것 같기도 했다.

* * *

이방원이 ‘구데타’에 협력을 요청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百年까지 하리라

정포은이 대답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

그래서 ‘포은’은 선죽교에서 ‘조영규’에게 맞아 죽었다. 그 피가 너무 붉어 선죽교 돌다리, 냉혹한 ‘돌’ 심장에까지 스며들어 5백년 후 오늘에도 돌마다 피 흔적이 붉다고 했다.

나는 돌들을 유심스레 봤다. 붉은 줄 섞인 화강암이었다. 돌 자체가 그렇게 생긴 것임에 틀림없겠다. 그러나 그것이 ‘포은’의 피 흔적이라는 전설이 무심한 돌멩이까지 ‘포은’화 하고 ‘충신’화 했다. ‘돌’이 ‘절개’를 절규한다.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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