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0일 화요일

[범용기 제4권] (1) 序章 - 글을 쓴다는 것

[범용기 제4권] (1) 序章 - 글을 쓴다는 것


해방후 얼마 안되어 “친일문학”이란 책이 출판되었다. 크기와 부피가 “웹스터 딕셔너리” 만큼이나 한, 거대한 몸집이다. 거기에 일제 시대에 친일한 분들의 행동기록, 단체, 주동자, 개인으로서의 회원명단 등등이 적혀 있는가 하면, 이름난 문인들의 친일작품까지 샅샅히 폭로된다. 그것은 쓰여진 그대로였고 이미 공개된 것이니만큼 어느 누구도 항의할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 사실은 사실이지만 왜 이제 와서 그런 것을 들먹이느냐고 속으로 불평하는 “명사”들도 없지 않았다지만,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분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어느 문호(?)의 “천황찬가”란 일문 시는 드물게 보는 명작이었다.

국내 민족운동의 거물로는 이상재영감, 윤치호선생, 최린 등등이 꼽히는 것이었다. 이상재 영감은 “지사”다운 마감맺히를 남겼지만 윤치호 선생은 비극을 남겼다. 국민복 차림으로 남산신궁에 오르내리시고 귀족원의원으로 일본국회에 드나드셨다. 그러다가 급작스레 “해방”되어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입국하고 보니 그 옛 친구들을 만나려니 부끄럽고 안만나려니 어색하고 양심은 끊임없이 불안하고 – 그래서 결국에는 개성에서 자결하셨다는 풍문이었다. 그 밖에도 그 동안에 변질된 분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중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만은 서대문 감옥에서 옥사나 다름없는 마감날을 물려 주셨으니 두고두고 민족의 선생이심에 틀림없겠다.

강요된 행동, 입만으로의 “쎄리프”도 문제에 오르거든 하물며 제손으로 쓰고 인쇄물로 공개된 글이 숨겨질 리가 있겠는가. “숨겨진 것이 드러나지 않음이 없고 작은 것이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莫現乎隱莫頭乎微)는 옛어른의 말씀이 돋보인다.

우리가 이제 와서 구태여 이완용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그의 후예는 얼마든지 있다. 실종된 “지사”들, 카멜레온의 얼굴들이 길바닥에 전시품처럼 너저분하다.

나도 글을 써냈다는 축에 들지 모르지만, 따지고보면 “빽넘버”와 함께 휴지통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도 많을 것 같으니 그런 “글”은 글이랄 수 없겠다. 그러면서도 고스란히 도서관 구석에 남아 천년만년 나를대변하거나 나를 나무랄 것도 사실이다. 그 경우에 내 “글”을 속량할 장본인은 “글”보다도 나 자신의 삶과 죽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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