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6일 금요일

[범용기 제3권] (246) 北美留記 第六年(1979) - 박정희 총살 직후

[범용기 제3권] (246) 北美留記 第六年(1979) - 박정희 총살 직후


1979년 10월 26일에 KCIA 부장이고 박정희와 고향을 같이한 김재규 씨는 박정희를 총살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총살한 것이 1909년 10월 26일이어서 같은 날짜다. 햇수로 말한다면 환갑년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등을 죽였지만, 다음 해에 한국은 일본에 합병됐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한국민족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다. 김재규가 독재자 박정희를 총살했지만 군사독재는 당분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김재규는 한국민주역사에 영원한 등대로 빛날 것이다.

우리는 시국의 급변에 대처하기 위하여 단기와 장기 양편으로 전략을 재고려하고 전선을 재정비해야 하게됐다. 당장 자유한국의 실현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우선 발단은 된셈이고 출구는 생긴 것으로 생각됐다.

그래서 이 목사는 N.Y. 동지들을 긴급 방문하려는 것이었다.

10월 30일(화) - 나는 종일 자리에 누워지냈다. 박정희 암살사건에 관한 T.V. 기자와 이 목사 대담이 T.V.로 방영된다.

10월 31일(수) - 이 목사는 밤 비행기로 N.Y.에 갔다. 수일 후에 돌아온 이 목사는 아직 이렇다 할 구체안이 없었다고 보고한다.

79년 10월 30일(화) - 박정희 암살내막이 T.V.나 신문에서 자주 다뤄진다. 그러나 아직도 “암중모색”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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