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3일 화요일

[범용기 제3권] (212) 北美留記 第六年(1979) - 가지가지 생각의 오솔길

[범용기 제3권] (212) 北美留記 第六年(1979) - 가지가지 생각의 오솔길


1월 4일(목) - 하늘과 땅이 눈으로 찼다.

N.Y.의 이승만 박사가 전화했다.

내용은 나의 귀국설에 대한 만류다. 국내, 서독, 미국 등의 동지들이 모두 반대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의 건설작업을 추진시키는데다 국외가 국내 못지않게 중요한 Locus라고 한다.

요컨대 내가 국외를 떠나서는 안된다는 충고다.

희망의 소리 방송 녹음했다.

우리가 아무리 “디아스포라” 즉 흩어진 백성이라 해도 6천년래 대하(大河)처럼 줄기차게 우리 혈맥을 흐르고 있는 한국(조선) 민족의 혈연을 벗어날 수는 없다.

부디 up-rooted Mentality에 들뜨지 말자고 권했다.

눈과 눈보라로 교통이 엉망이다.

1월 5일(금) - 새해잡아 벌써 닷새가 됐는데 나는 아직도 따뜻한 방에 두더지처럼 누워 있다.

바깥은 몹시 춥다는데 나는 온실안 화초랄까?

추운 줄도 모르고 먹고 눕고 자고 그리고 심심하면 읽고 쓰고 뭔가를 생각하곤 한다.

지난 12월 27일에 김대중 씨가 감옥에서 나왔다는 기사가 서울의 신문들 제1면을 메꿨다.

“하늘이 그리워…”라는 김대중 씨 옥중수기도 연재된다.

박정희는 옆에서 빙그레 웃고 있을 것이다.

“김대중! 당신 목숨은 내 손바닥 안에 있소. 당신이 살고 죽고 하는 ‘운명’이 내 손에 쥐어있단 말이오!”…

예수의 광야시험에서와 비슷한 악마의 너털 웃음이 들리는 것 같다.

1월 12일(금) - 독일의 Bonhoeffer가 미국에서의 교수직을 사면하고 귀국할 때에 R. Niebuhr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지금 귀국해서 고난을 분담하지 않는다면 전후 독일을 재건할 때에 아무 발언권도 없게 된다.”

그 “발언권”의 실질적인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진다.

민주체제 확립인가? 정권잡는 것인가? 게르만 민족의 정화(淨化)된 “혼”인가?

그렇잖으면 전세계 역사가 하늘의 영광으로 빛나게 하는 신학자다운 “비전”의 실현인가?

지금 한국의 수난동지들은 이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에서 싸우고 있다.

그들은 언제 싹틀지, 자랄지, 안자랄지도 모르면서 씨만 뿌리는 농부다.

자기들이 목숨을 뿌린 씨가 맺은 열매를 자기 손으로 거둘지 못 거둘지 알지도 못한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딴 세대가 거두어도 좋다. 우리는 다만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함으로서 족하다.

다음 일은 하느님이 맡아 하신다. 우리는 믿음으로 노래하며 간다…

“발언권”은 “지금”, “여기서”만 우리의 것이오 “전후 독일”이나 “자유한국”에서는 “그 때”, “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발언권”일 것이다.

1월 14일(일) - “본국에서 오셔야 한다고 간청하는 때 가셔야 한다. 가서 가만이 앉아만 계셔도 힘이 되겠다는데 안가시면 삶의 마감기록이 애매해지고 ‘광명’이 ‘무명’(無名)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진언(進言)이다.

옳은 말이다.

지금 이 목사는 보스톤에 갔다. 돌아오면 나의 귀국수속을 진행시켜 보기로 맘먹었다.

옆구리가 아직도 좀 아프지만, 미국에서의 여러 가지 임무를 정리하고 귀국을 서두를 심산이다.

이목사가 Boston, N.Y.등지를 다녀왔다.

몹시 피곤해 한다.

1월 16일(화) - 라오스는 통일전선군이 점령했단다. 소련산하에 들어간 셈이다.

“중공”은 “라오스” 때문에 소련과 전쟁할 생각이 없고 또 그럴 실력도 없다.

이 목사가 N.Y.에 갔다 왔지만, 아직 정확한 “정세분석”도, “행동프로”도 되있지 않아서 20일쯤에 다시 모이기로 하고 돌아왔다.

그때에는 나도 동석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1월 19일(금) - 토론토 민건 총회가 이목사 집에서 열려 새벽 세시까지 사업계획을 토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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