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3일 화요일

[범용기 제3권] (211) 北美留記 第六年(1979) - 첫머리에

[범용기 제3권] (211) 北美留記 第六年(1979) - 첫머리에


내 어렸을 때 우리집 사랑채 볕 드는 벽에 붙여 두껍고 넓은 널판이 재어 있었다.

그걸 “집널”이라 했다. 아마 집질 때 쓰려는 널인갑다 하고 나는 알았노라 했었다.

그러나 집지을 때에도 손 하나 얼씬 못하게 한다. 알고 보니 그것 부모님 세상 떠나실 때 그 속에 누워 가실 “관” 널이었다.

“관”을 “집”이라 했다.

방랑객에게는 “집”이 “관”일지도 모른다.

아버님은 그 널빤지를 보실 때마다 “안도감” 같은 것을 느끼셨을 것이다. 허긴, 시골서 갑자기 “관널”을 장만하려면 속살이 무르고 얇고 초라하고 시들시들한 놈 밖에 얻어지지 않는다.

“죽은 것”을 “돌아간다”고 한다.

고향 집으로 돌아간다. 조상들 계신데로 돌아간다. 흙으로 돌아간다. 하늘나라로 돌아간다. 하늘 아버지 품에 돌아간다….

어쨌든 “인생”은 나그네고 “저 생”은 본고장, 본집이라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나그네로 있다가 본집에 돌아갈 때 누더기 옷을 걸치고 거지꼴로 돌아가기는 싫을 것이다.

그래서 값진 진공단 수의를 입고 두툼한 “관” 집에 누워 거창한 상여를 타고 “에야 데야” 수십명 상여꾼들 외침 속에 가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장공”도 올해가 79세니 짙은 “황혼”의 계절이다.

고요히 촛불이라도 밝혀야 하겠다. 반딧불만한 빛이라도 눈여겨 추적해야 할 심정이다.

그래서 그 “명멸”하는(Flickering light) 반딧불만 보면 “어둠”을 달리다가 딩굴기도 하고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올해는 80직전에 넘어야 하는 험한 봉우리다.

건너 뛰어야 할 Chasm도 있다.

그런데 나 자신이 이에 대처하여 얼마나 aware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모름지기 실패작일 것 같다.

늙으면서 “회향증”(nostalgia)이 늘어간다.

위에 말한 “환고향(還故鄕) - 돌아가고 싶은 ”추억“의 낭만이 강해진다.

그래서 가지도 못하면서 “간다”, “간다”하고 친구와 동지와 집안식구들 마음을 부산하게 군다.

“간다”해야 “서울”간단 말이 고작이다. 그러나 진짜 내가 보고 싶은 고장은 내 소년 시절의 이북 한모퉁이다.

그 고장, 그 인간들이 “어린이 Wonder Land”같이 꿈 속에 드나든다.

“하지장”(賀知章)의 회향우서(回鄕偶書)란 “시”가 생각난다.

“하지장”은 “당”나라 “현종” 때 벼슬아치다.

나이 86세가 되어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집에 찾아왔다. 세대가 바뀌어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

“어려서 고향 떠나,
나이 먹어 돌아왔네.
‘사투리’는 그대론데
내 머리만 희었구나!
아이들 쳐다보고
웃으며 묻는 말-
‘손님 어디서 오시나요?…”

少小離家老大回
鄕音無改鬢毛衰
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

70대의 마감고개를 넘기만 하면 다음에는 또 80의 완경사 언덕을 걷게 될 것이다.

천천히, 비스듬히, 발을 옮기며 가담가맘 약수도 마시고, 과일 따먹고, 젊은 세대가 갖다주는 도시락도 맛보며 그럭저럭, 무리없이 또 ‘인생’을 걸을 것이다.

하느님이 허락하시면 – 말이다.

위에서 “집” 얘기가 나왔었지만, 사람이 삶을 여행하는 가운데, 누게 번데기처럼 제 실(絲)로 제 몸을 감싸 “집”을 만드는 일이 있다.

사람도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노라면 “一家”를 이룬다고 한다. 말하자면 “제 집”이 생겨서 “번데기”로 “안주”한다.

그러나 그 “집” 속에서 더 자유로운 몸을 입기 위한 고요한 변화공작이 진행되어야 한다.

“장공”의 “회향증”도 “관”이나 “무덤”에의 “돌아감”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에 탈출할 구멍을 뚫어보고 싶어서인 것이다.

용케 구멍이 뚫려져서 80대의 완경사를 걸을만큼 해방된다 하더라도 내 자랑은 없다.

“Soli Deo Glorea”는 칼빈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새해 잡아 이상철 목사의 토론토 한인연합교회 목회도 10년이 된다.

어디든 더 어려운 교회에 옮겨 다시 긴장한 심경으로 창조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당회에 그 뜻을 표명했다.

교회가 뒤숭숭해지고 당회원들은 다같이 사표 내고 물러난다고 그들 결의를 표명했단다.

일종의 교회 “해산”이어서 재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결국 이목사는 사표를 철회했다.

이 목사 막내딸 정희는 아직 고등학교 학생이지만, 그녀의 평이 가관이다.

“이번, 교회가 가진 태도는 개교회 이기주의다. … 교회가 하느님의 교회지 이 목사 교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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