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일 월요일

[범용기 제3권] (182) 北美留記 第五年(1978) - 스캇 박사의 충고

[범용기 제3권] (182) 北美留記 第五年(1978) - 스캇 박사의 충고


1월 8일에 스캇 박사에게서 편지가 왔다. “나라 되는 일에 너무 일방적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충고다.

나쁘면서도 좋은 데가 있고, 나쁜데서도 좋은 것이 난다는 역사의 비밀을 무시 못한다는 것이었다.

영국 신사로서 내 표현이 너무 거친 것을 고쳐주려는 충고였다. 그리고 영국인의 실리주의 정치가 중도(中道, 中庸)주의적인 정책으로 시행되는 본을 배우라는 뜻도 되겠다.

그러나 후일에 만나서 박정희의 독재정치와 학생데모에 대한 15인의 사형 언도와 김지하 시인에 대한 사형 언도 등등의 실상을 듣고서는 아연실색이랄까, 더 말이 없었다.

그는 불란서 혁명 때 “로베스 피에르”나 크롬웰의 황제 참수(斬首)나, 런던교의 살인극에 비하면 박정희는 점잖다고 생각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를 아껴서 한 말임을 감사한다.

1월 12일 – Washington의 ‘문명자’로부터 장거리 전화가 왔다.

내가 귀국하고 싶어한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어서 “귀국은 박정권이 원하는 것이니 아예 단념하고 당분간 해외에서 반독재운동에 총력을 기울이자”는 ‘콤멘트’였다.

1월 16일 – N.Y. 이승만 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번 3.1절에는 국내, 국외가 연합하여 한 성명서를 내고 공동서명으로 발표하자는 것이었다.

국외성명서 초안을 당장 써 보내 달라기에 9PM에 전화로 구춘회 사무실에 초안을 읽어보냈다.

수화기에 자동녹음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1월 17일 – 어제 전화로 보낸 성명서를 글로 쓰고, 윤보선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동봉하여 속달우편으로 N.Y. UM 사무국에 부쳤다.

그런데 “국외성명서”란 것은 국외민주인들도, 국내에서 발표한 3.1구국선언서에 동의한다는 의미의 간단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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