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5일 목요일

[0101] 예찬의 말씀 - 성 프란체스코 / 1926년

재일본 조선기독청년회 <사명지> (제3호, 1926년)

예찬의 말씀- 성 프란체스코


아시시의 성자여, 볼딩구라 거친 초방(草房)의 한 구석에서 제단도 사제도 없이 주의 성찬을 지키시고 깊은 침묵 가운데 저세상으로 옮기신 성자여, 당신이 가신 지 700여 년 움부리아의 봄풀은 해마다 푸릅니다. 그러나 흐르고 흐르는 큰 물결의 한 구비인 이 세상은 너무 변하지 않았습니까.

성자여, 당신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의 가슴에 안기셨습니다. 거만(巨萬)의 부(富)를 가질 수도 있었으며 영예로운 무사도 될 수 있었습니다. 청춘의 붉은 노래 속에서 향연의 왕이라고 젊은이의 찬탄을 받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막히게 맑은 움부리아 창공에 흰 구름이 흐르고 무너진 아시시 성 틈에 묵은 풀이 푸른 봄날, 교외로 거니는 병여(病餘)의 당신 가슴 속에는 하염없는 공허가 느끼어졌습니다.

“헛되고 헛되어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 사람이 수고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해가 뜨고 해가 지나 같은 곳을 허덕이며, 바람은 남으로 갔다 또 북으로 오되 같은 곳을 돌고 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

“아, 나의 과거도 헛된 것뿐이다. 생각하면 하염없는 일이다.”

이리하여 당신은 모든 것을 버리고 조그마한 암자 속에 모신 성상 앞에 꿇어 엎디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실재(實在)이시며, 내 생명을 받으실 주인이시라고. 그 후 당신은 성루(聖淚) 머금은 두 눈으로 만상을 보시며 일소부주(一所不住)의 순례자로 세상을 마치셨습니다.

성자여! 당신은 사랑으로 만상을 포옹하셨습니다. “형제인 태양이여, 자매인 달이여!” 하고, 아름다운 피조물 찬탄의 노래를 부르셨으며, 숲속에 새를 모으시고 주의 사랑을 말씀하시며, 이리를 찾아가서 순순히 가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안(慈顔)을 대할 때 자연의 모든 것은 기뻐 뛰놀았으며 죄 많은 사람은 가슴에 얼음이 풀리었습니다.

성자여! 당신은 주의 십자가를 생각하시고 대로에서 통곡하셨으며 머리에 재를 뿌리시고 참회를 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실 때 “오, 주여!” 하는 첫 말씀에 감이 극(極)하셔서 더 많은 말씀 못하시고 눈물 흘리셨습니다.

성자여, 당신은 가장 작은 이의 형제가 되셨습니다. 걸인과 나병자와 빈자와 죄인의 가장 살뜰한 형제이셨습니다. 당신은 갈의승대(褐衣繩帶)에 일장일표(一杖一瓢)로 표박하시면서도 가난한 형제의 양식을 빼앗는가 하여 늘 염려하셨습니다.

성자여! 당신은 참으로 순진하셨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서 거짓을 찾을 수 있사오리까. 당신의 행실에서 꾸밈을 볼 수 있사오리까.

성자여! 당신은 참으로 겸손하셨습니다. 당신은 종교개혁가나 예언가로서의 의식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오직 당신의 영을 응시하시고 당신의 몸을 편달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정적 속에는 영원한 활동이 품기어 있었으며, 당신의 여윈 몸에는 그윽한 후광이 둘리어 있습니다. 당신의 고요한 기도와 함께 어두운 종교계에 새벽이 왔습니다.

성자여! 그러나 당신의 자광편조(慈光遍照)하시는 거룩한 인격 속에는 아무도 손대지 못할 준엄한 힘이 숨어 흐름을 봅니다.

성자여! 당신이 가신 후 700여 년, 세상에는 성빈(聖貧)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맘몬의 발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기계와 기계의 접촉같이 차갑게 되었습니다. 유혈과 다툼이 진리가 되었습니다. 자비는 자기 죄악의 엄식물(掩飾物)이 되었으며 위선자의 피난처만 불었습니다. 나팔과 꽹과리 소리에 가두는 소연(騷然)합니다. 영리한 조그만 요마(妖魔)가 지붕에서 지붕으로 원숭이같이 춤을 춥니다. 수만의 발자국 소리는 망령의 영탄(詠嘆)과 함께 멸절로 흘러갑니다.

성자여, 당신이 세상에 계실 때 교회당 안에는 도박과 고리대금이 공개되었으며, 승직을 매매하며 빛다른 여자가 방황하였다 합니다. 당신의 거룩한 눈으로 어찌 그 현상을 참고 보셨습니까. 그러나 당신은 겸손하게 말없이 앉으셔서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나라를 나타내셨습니다.

성자여, 지금은 말세라고들 말합니다.

미래세계의 물결소리가 원뇌(遠雷)같이 들립니다. 이제 우리는 거친 우리 영혼의 폐허를 바라보며 성자의 발자취를 사모하여 예찬의 말씀을 드립니다. 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아멘.

댓글 1개:

  1. 장공 김재준 목사의 전집은 그의 삶의 행적을 따라 년도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 중 첫번째 글은 1926년에 발표한 '성 프란체스코를 기억하는 글'(예찬의 말씀)이다.

    흔히 기장과 한신은 영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정작 기장과 한신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김재준 목사는 '성 프란체스코'의 영성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종교적 열광스러운 현상만이 영성과 성령운동이라고 하는 한국의 편협한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단아'로 낙인이 찍혀 있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영성이라는 것은 예수의 복음과 십자가를 삶으로 드러내는 삶이라고 생각된다.

    교회 속에서... 예수를 문자에 가두려는 율법주의에 저항하고...
    사회 속에서... 맘몬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에 저항하고...
    역사 속에서...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려고 노력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언자적인 사회 참여의 모습만 부각된 김재준 목사에게서 영성의 조각들을 찾아내어 연결하면... 왜 그가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한국의 정치현실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역사 참여의 신앙을 버리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외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그의 사회 참여가 정치적인 야망이나 영웅주의에 심취한 행동이었다면 70대 중반 이후에... 그동안 쌓아놓은 업적을 홍보하면서 비교적 편안한 삶... 대접받는 삶을 살면서 마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70대 중반 이후의 역사 참여의 행동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깊은 영성에 기반을 두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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