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8일 월요일

[범용기 제3권] (75) 한국인의 캐나다 이주와 상철(태평양에 “다리”를 놓는다) - 상철과 캐나다 이민사

[범용기 제3권] (75) 한국인의 캐나다 이주와 상철(태평양에 “다리”를 놓는다) - 상철과 캐나다 이민사


“상철”은 1961년에 캐나다 뱅쿠버의 유니온 신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주로 목회심리 부문을 전공했다. 그러다가 1962년 9월부터 63년까지 제네바의 “에큐메니칼인스티튜트”에서 학업과 아울러 세계적인 지도자들과의 인간관계를 넓혔다. 1963년 봄에 다시 뱅쿠버에 돌아와 학위 논문 준비에 정진했다. 그 동안에 뱅쿠버 일본교회 “미쯔이” 목사가 신학공부를 시작하면서 목회까지 겸임할 수 없다해서 상철은 일본교회 임시목사로 시무했다.

그러다가 1964년 5월에 귀국하여 아카데미 원장 강원룡과 함께 그 기관 총무로 일했던 것이다.

1965년 7월에 다시 뱅쿠버에 와서 비행장 부근에 있는 Steveston United Church의 목회자가 됐다. 한국이민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뱅쿠버에 한인연합교회를 창설했다.

1969년 6월말까지 매주일 3개 국어로 설교하는 목회를 하다가 1969년 7월 1일부로 토론토 한인연합교회 목사로 부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당시의 토론토 한인연합교회는 문자 그대로 “창설기”에서 터 닦고 주춧돌 놓은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정대위 목사가 터를 고르다가 “오타와”의 칼톤대학 교수로 초빙되면서 “상철”을 억지로 토론토에 끌어왔다고 들었다.

내가 무슨 일로던가 캐나다 동부에 돌아 토론토에 들렀을 때, 연합교회는 미조직 교회로서 아직 장로도 없는 교회였다.

여신우회만은 상당히 활발한 것 같았다.

교회란 생명체니만큼 나무 자라듯 자라야 한다. “나두 한번 큰 교회 만든다”고 갑작스레 교인 수를 부풀게 하려는 것은 인간의 욕심이다. 교회는 거목(巨木)의 연륜(年輪)같이 자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읽은 맹자의 말씀이 떠오른다.

“농부 둘이 각기 자기 논을 갖고 농사에 부지런하다. 이웃 논의 벼는 이삭이 피었는데 자기 논의 벼는 겨우 이삭이 치일락 말락이다. 내가 네게 질성 싶으냐? 그래서 자기 벼 모개를 왼종일 억지로 뽑아 길다랗게 목을 늘였다. 그리고서는 신이 나서 자랑했다. 이튿날 해가 뜨니 자기 벼 모개는 허옇게 시들어 말라 버렸다…”

생명은 안에서 밖으로 고요히 자라는 것이다. 밖에서 안으로 강제하면 병들든지 죽든지 한다.

통치자가 국민을 다루는 것도 이 “진리”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다.

얘기가 곁길로 나가버린 것 같다.

상철의 얘기를 매듭지어야 하겠다. 한마디로 말해서 “상철”은 한국민족의 캐나다 이주사(移住史)에서 적어도 뱅쿠버와 토론토에 있어서는 “선구자”, “개척자”, “건설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아 무방할 것이다.

10년 전에 거의 “무”에서 시작한 토론토 한인연합교회는 지금 출석교인이 3백명 선에 이르렀고 수석목사, 부목사, 음악목사, 비서진 등 Paid Staff가 각 분야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건전하게 자라는 교회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른 데는 이런 교회가 없다든지, 없으리라든지 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Fetisism이나 조작에 의한 확장주의를 경계하려는 의미에서 고언(苦言)인 것이다.

그리고 속칭 “부흥집회”에는 성령의 역사가 아주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신학적, 이성적 비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함이다. 마치 수돗물이 저수지에서 두세번 여과 작업을 거쳐서 부엌에까지 배급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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