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2일 화요일

[범용기 제3권] (6) 관용ㆍ정희 결혼

[범용기 제3권] (6) 관용ㆍ정희 결혼


관용은 그동안 정희(貞姬) 양과 사귀고 있었다.

인연인즉은 관용이 군대에 입대하자 같은 부대에 있는 충주 출신 이현주(李賢周)와 친하게 됐다. 현주는 감리교 신학생이었고 영어실력도 있고 글재주 비상해서 어린이 문학계에서는 이미 등용문을 넘은 청년이었다.

그는 홀로계신 어머니를 뫼시고 미혼의 누이동생을 돌보며 가난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입영중에 그는 장질부사에 걸려 중태에 빠졌다.

군대 안이란 환자, 특히 전염성 환자에게 제대로 관심을 가져주기에는 대무 대범했다. 전선에서는 핑핑한 생사람도 갑자기 죽어 들어오는데 싸우지도 않고 누워 앓는 병사를 그리 대견하게 여길 까닭이 없겠다. 그래서 병실에 버려지다시피한 이군은 거의 인사불성이었다. 관용은 그를 업어다가 후방병원에 입원시키고 어머니를 불러 간호하게 했다.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로 위기는 차츰 면하게 됐다.

고열 때문에 머리털은 없어지고 머리도 멍해진 것 같았다 한다. 결국 서울 삼청동 육군병원에 옮겨 어머니 옆에서 간호받고 오랜만에 회복되었다. 그러니까 둘이 “참 친구”일 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현주는 관용의 맘씨를 착하게 봤다.

“저놈은 내 누이동생을 괄시하지 않을게다”하고 자신있게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 ‘중매’를 한 것이었다.

정희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가난 때문에 대학을 단념하고 충주우편국에서 일하다가 뽑혀서 청와대 전화교환수로 취직돼 있었다. 집안은 전주이씨로서 둘째가라면 억울하달 ‘양반’이란다. ‘한국형’ 미모의 아가씨 – 활달하고 개방적이고 유머있고 마음 폭이 넓어서 큰 집안 ‘맏며느리감’이랄 수도 있겠다. 오빠를 닮아서 글재주도 보통이 아니다. 아내는 아카데미에서 선을 보고 첫눈에 들었다고 했다.

현주가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할 때 나도 참석했다. 정희는 가족들과 같이 찍는 기념촬영에도 들지 않고 내게와서 내 팔을 끼고 같이 걸었다. 막내 딸같이 귀엽다. 늙은이들께 선보기이 훨씬 전부터 관용은 사귀고 있었다. 늙은이는 그들의 결정된 다음 프로에 으레적으로 끼어 드는 것이다.

“예쁘더냐?”

“예뻐요.”

“맘성이 좋으냐?”

“그럼요! 활발하고 구김새 없고 개방적이고 농담도 잘하고…”

“서로 사랑하느냐?”

“어젯밤에도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고 넘어오고 하면서 별 얘기 다하고 약속도 하고 했어요.”

……

그래서 1971년 4월 8일에 경동교회에서 강원용 목사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을 온양으로 제주도로 실컷 돌아다니다 왔다.

옷장, 이부자리, 병풍, 접시류 살림살이 준비도 알뜰하게 차려갖고 왔다.

수유리 와서 얼마동안 식모애와 같이 부엌을 돌보고했지만 식모애가 버스 차장인가 한다고 나간 다음에는 자기가 도맡아서 부엌을 현대식으로 프로판 가스를 쓰고 온돌은 모두 스팀 파이프로 하고 온수탱크 하나만으로 ‘heating’이 되게 했다.

비용이 78만원인가 들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연탄가스로 저도 모르게 죽어나간다는 판에 그 정도의 비용이 문제일 수가 없었다. 사실 수년 전, 은용, 경용이 캐나다 가기 전,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에, 둘이 같이 안방에서 자다가 큰일날뻔 한 일이 있었다.

밤중에 쾅하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은용이 마룻방 낭하에 쓰러져 있었다. 정신없이 문을 박차고 나오다 넘어진 것이었다.

경용은 안방에 그래도 누워 있었다. 사방문을 열어제끼고 동치미 국을 먹이고 한참 법석해서 무사해졌다.

그 다음부터는 장판을 유심스레 도배질하고 작은 환기창을 언제나 열어 놓고 조심은 각별하게 했지만 근본에서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번 스팀장치는 잘한 일이었다. 큰 연탄 몇 개로 헛간에 있는 온수탱크만 덥히면 되는 것이고 가스 소등은 있을래야 있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정희는 결혼하자 곧 임신되어 1972년 첫애기를 해산했다. 이름을 ‘명은’(明恩)이라고 지었다.

Bright and Gracious, 명랑하고 인자하라는 뜻이다. 이름에 성격이 따른다는 것도 엉터리는 아닌 것 같다. 명은은 명랑하고 착했다.

나는 두 살짜리 ‘명은’을 애기차에 앉히든지 안든지 하고 아침 우이동 숲속길 거니는 것이 제일 즐거웠다.

‘명은’도 그렇게 할아버지를 따르는 귀염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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