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2일 화요일

[범용기 제2권] (141) 잠시 “런던”가 바람쐬고 다시 투위에(1969) - 손순조 목사 얘기 한 토막

[범용기 제2권] (141) 잠시 “런던”가 바람쐬고 다시 투위에(1969) - 손순조 목사 얘기 한 토막


원래 성결교회 목사로 강원도 강릉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다 한다.

젊은 성직자로서 2년 동안 목회에 정성으 ㄹ쏟았다.

일제 말기, 일제의 성결교회 말살정책에 걸려 투옥되어 2년동안 옥고를 치렀다.

형기를 마치고 강릉 자기 교회에 가 봤다.

교인이라곤 한 사람도 없고 교인들이 갔고 있던 성경 찬송가 등은 모조리 목사집 고깐에 쌓여 곰팡이로 썩는 것이었다.

“예수 냄새 내다간 감옥가기 알맞다. 다 집어 치우자!:” - 그런 심사였던 모양이란다.

그는 너무 실망햇다. “나는 목사 자격이 없나보다!”

그래서 그는 목사직을그만두고 서울에 올라와 가정인으로 충실한다.

그렇다고 그가 예수를 버린 것도, 교회를 물러난 것도 아니다. 그는 근처 감리교회에서 평신도로 깔끔하게 봉사한다.

사람들이 그를 ‘목사’라 불러도 구태여 변명하지는 않는다. 오랜 후일에 그는 감리교 목사로 교회를 맡았다.

나는 그를 존경한다. 그렇게 인정있고 예절 바른 분은 보기 드물 것이다.

그의 한 옛날 회고담 한토막으로 이런 얘기도 있다. 그의 결혼 초기 신접 살림이 시작될 무렵에 그는 신부와 함께 자주 이름난 한식집에서 융숭한 식사를 즐겼다. 신부는 즐거웠다.

그런데 가는 때마다 메뉴를 바꾼다. 신부는 그 숨은 의도적인 행동에 생각에 잠겼다.

“아, 이건 내 요리솜씨가 좀더 성숙되게 하기 위해 ‘교재’(敎材)를 제공하는 것이구나!” 그래서 신부는 눈을 흘겼다. “다시는 안 따라온다”고 화를 냈단다.

그래서였는지 우리 안사둔님 요리솜씨는 보통이 아니다.

손목사는 수석회원(水石會員)이기도 하다.

동양적인 고상한 풍류다. 일년에 두 세 번씩 수석회원들은 산수(山水)를 탐방한다. 소풍도 즐길겸, 기묘한 자연석을 주워보려는 것이다. 어떤 돌은 진정 산수화(山水畵) 그대로다.

회원들은 가담가담 합동전시회를 연다. 나도 두어번 관람했다. 일품(逸品)들이 많았다. 손목사가 출품한 것도 자연의 비범한 작품들이었다. “어디서 이런 묘한 돌을 주어 왔나” 싶었다.

그는 논 6만평인가를 팔아 언덕을 몇십만평 사서 거기에 밤나무를 심었단다. 수익이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말단공무원들의 성화는 감소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석과 전원(田園)을 즐길 줄 아는 동양 풍정(風情)의 예술인이랄 수 있겠다.

그는 내 큰 사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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