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8일 월요일

[1807] 집 짓는 인간(마태 7:24-28) / 1984년 5월 28일

집 짓는 인간[마태 7:24-28]


옛 어른들 말에 일년 설계는 곡식심는 것이 제일이고 십년 설계는 나무심는 것이 제일이고 백년 설계는 사람심는 것이 제일이라(一年之計 莫如樹穀 十年之計 莫如樹木 百年之計 莫如樹人) 하였습니다.

교육은 사람심는 일입니다. 우리 한신대학은 사람심는 百年大計를 위한 기관입니다.

오늘 준공한 新舘은 사람심는데 필요하기 때문에 지어진 집입니다.

예수님도 목수였으니 건축가의 부류에 속한다 하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의 비유에는 탑을 세운다, 집을 짓는다 하는 비유가 애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영향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근년에 人間建築이란 말이 유행됩니다. 農耕時代에서와 같이 “인간을 심는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건축한다(Human Building)고 합니다.

현대는 도시문명시대임과 동시에 건축문명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인간건축을 위해서도 건축물 즉 “집”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新舘도 그 하나의 실례겠습니다.

인간의 교육에 있어서 건물이 필요합니다만, 그것이 인간격을 결정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중요한 수단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인간이 인간됨을 위한 비유적 설명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인간답게 되는 기초, 즉 집의 기초와 같은 것은 창조주 하느님 신앙입니다. 그 신앙을 “만세반석”이라 했습니다. 이 위에 집을 세우지 않으면 恒存性보다도 流動性이 앞서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신임하기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코로 숨쉬는 인간을 누가 믿겠느냐?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 두려운 줄 아는 인간에게 더 많이 책임성과 信任度가 기대되는 것입니다. 自己利益本位의 人間은 자기이익에 따라 카멜레온 같이 변모 변색합니다. 중국에 “양진”이란 사람이 한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길에 떨어진 황금자루를 보았답니다. 그러나 손 댈 생각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같이 가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데 왜 주워가시지 않습니까?” 양진은 말했습니다. “하늘이 알고 神이 알고 당신이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 하겠소?”(天知 神知 子知 我知 何謂無知)했답니다. 인간은 하느님이 모르는줄 알고, 아무일이나 마구 해버리지만, 하느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믿는 사람은 惡行을 두려워 합니다. 따라서 善에 대한 恒存的인 의무를 갖게 됩니다. 그것이 그의 삶의 반석이 됩니다.

인간은 나서 죽을 때까지 세상에서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世俗은 물결입니다. 우리의 人間建築이 萬世磐石이신 하느님 신앙 위에 서지 아니하면 세상의 바람과 홍수에 무너지고 그 世波에 빠져 죽거나 떠내려 가고 맙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의 化身입니다. 단두대도 진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폭력정치 집권자는 하느님 신앙을 가진자를 미워합니다. 그 사람들은 진리의 증언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집권자인 그들은 하느님 신앙이 없으므로 폭력에 의존할 밖에 없습니다. 폭력이 하느님 신앙과 맞서서 승리한 例는 없습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합니다. 얼마 전에 로마 法王이 우리 민족의 순교자들 시성식(諡聖式)에 와서 친히 집례한 일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2백년 전 신앙과 진리를 위해 죽은 사람들이 2백년 후에 세계 만민의 숭배와 존경의 대상으로 영원한 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죽인 폭군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역사의 심판을 받고 경멸의 대상으로 흙속에 매장되어 후패할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 신앙을 부끄러워 하지 마십시오. 인간은 상대적 존재기 때문에 무언가를 믿지 않고서는 못견디는 것입니다. 자기를 믿든지, 돈을 믿든지, 권력을 믿든지, 악마를 믿든지, 생쥐를 믿든지, 어떤 일본인처럼 여우를 믿든지, 인도인처럼 암소를 믿든지 어쨌든 무언가를 믿잖고서는 자기 공허 때문에 못 견디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무언가를 믿어야 한다면, 참되고 거룩하고 영적이고 영생의 원천인 삼위일체 사랑의 하느님을 믿는 것이 참 지혜로운 선택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삶의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학문도 최고의 수준에 올라가면 一家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學界에 자기집을 지었다는 말이겠습니다.

오늘 준공한 이 新舘이 여러분의 학문건축에 유용할 뿐 아니라, 여러분의 인격건축에 씸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나서 죽을 때까지 세상에서 사는 것입니다. 역사 권외에서 살수는 없는 운명에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영원한 하늘나라 시민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존은 두겹입니다. 땅과 하늘의 옷을 껴 입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 “몸” 안에 유기체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학원의 기초는 학문과 아울러 윤리적 영적 기초 위에 서 있습니다. 동시에 역사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신대학 학생된 것을 부끄러워 마십시오. 여러분은 장차 우리 역사 창조에 특출한 인물이 될 것입니다. 훌륭한 인물이 났을 때 그가 난 고향, 그가 다닌 학원도 함께 영광을 받는 것과 같이 여러분이 우리 역사와 교회에 백배 천배 재생력을 가진 한알의 밀이 될 때 지금 이 낙성한 新舘도, 이 학원도 이 江山도 함께 영광 받을 것입니다.

1984년 5월 28일.
한신대 수원 캠퍼스(신관 낙성식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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