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24일 목요일

[범용기 제2권] (96) 다시 한신 캠퍼스에 – 한신캠퍼스 정착

[범용기 제2권] (96) 다시 한신 캠퍼스에 – 한신캠퍼스 정착


싫든 좋든 ‘한신’ 캠퍼스에 돌아온 나는 신학교육에 전념했다. 내부시설은 미비했지만, 그런대로 새 건물에서, 새 분위기, 새 기분으로 일할 수 있었다.

교수진도 정비됐다. 신약에 전경연, 현대신학에 서남동, 조직신학에 박봉랑, 종교교육에 문동환, 구약에 문익환, 그리고 캐나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우정은 헬라어와 신약원전 강독을 맡았고 전남 광주 백영흠 계열의 전임강사 김경재는 한국재래종교, 특히 ‘동학’ 연구와 강의 등을 담당했다.

종교음악은 나운영ㆍ유경손이 맡았다. 후에 구두회로 대체되기도 했다.

그 밖에도 각 전문분야에 따라 여러 명사들이 시간강사로 출입했다.

모두가 자유분위기 속에서 자기들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주로 실천신학 부문에서 설교학, 목회학 등을 강의했다. 내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교수들이 안하려는 부스러기 과목들을 주워 모은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열두 광주리에 넘쳤다.

나는 교육책임만 맡은 부학장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학장’이라고 부른다.

일일이 변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함태영 부통령은 자주 신학교에 ‘행차’하신다. 나도 높이 모셨고 교직원, 학생들도 존경과 예의로 맞이했다.

그가 ‘학장’이기 때문에 나는 한달에 몇 번씩 그의 관저에 찾아가 학교 사정을 상세하게 보고 했다.

언제나 그는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가 부통령으로 된 초기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자주 방문했었다. 행정에 관한 자기 의견도 진술했다고 한다.

하루는 이승만 박사가 잔뜩 성이 났더란다. “내가 대통령이지 당신이 대통령이오?”

그 다음부터는 일체 경무대나 중앙청에 발길을 들여 놓지 않았다. 민원(民願) 사건으로 행정당국에 지시 또는 부탁할 일이 있을 경우에는 같은 종씨인 함 비서실장을 보내곤 했다.

신학교에서 원족이나 명소 순례로 나갈 때에는 반드시 느지막해서 그리로 ‘행차’한다. 뭔가 푸짐한 음식이나 선물을 나누어 준다. 그리고서는 얼마 안 있고 간다.

‘함’옹은 부통령 실무를 사퇴했다.

이승만 박사는 ‘함’옹에게 위로금으로 금일봉을 보내왔다. 그리 좀스러운 액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함’옹은 그것을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려했다. 함 비서실장은 으레 자기가 모시고 다닐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춘배는 김정준을 추천했다.

김정준은 영어, 독일어, 일본어 등에 능숙할 뿐 아니라, 민첩하고 그때 그때의 ‘착상’이 재빠르다. 김춘배의 추천이 잘못이랄 수는 없겠다.

몇 달의 긴 여로(旅路)에 90 노인을 모시고 다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서 뜻하지 않은 사고가 생길지 모른다. 그래도 정준은 유감없이 책임을 다했다.

김정준은 에딘바라대학교 대학원에서 구약을 전공하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전공은 시편이었다.

돌아오자마자, 김정준이 쓴 “함태영옹 세계일주기”가 두툼한 책으로 나왔다.

여행중인 ‘함’옹은 ‘헤이그’에 묻힌 ‘이준’ 열사의 무덤을 참배하려 했다. 이준 열사와는 한말 법률학고 제1회 동기동창이었다니 그럴 밖에 없었을 것이다.

헤이그 시청에 들어가 그 고장을 물었다.

“여기는 산 사람 다루는 데고, 죽은 사람 건사하는 데가 아니오.”

죽은 사람 건사하는 고장이란, 공동묘지일 것이다. 여기저기 탐문 끝에 중앙공동묘지에서 ‘이준’ 무덤을 발견했다.

‘함’ 옹은 묘비를 안고 통곡했다.

“나는 그렇게 진짜로 통곡하는 광경을 난생처음 봤다”고 김정준은 술회한다. 90 노인이지만 감정이 매마르지 않았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홍콩’에 들렀다.

그때 ‘한신’ 동지인 ‘김창준’이 무역관계로 홍콩에 와 있었다. 김정준은 ‘함’옹 몰래, 김창준과 함께 ‘홍콩’의 밤거리를 산책했다. ‘함’옹은 호텔 방에서 혼자 고적했다.

김정준이 돌아왔을 때, ‘함’옹은 노여움이 풀무불처럼 타올랐다.

“너는 나의 수행 ‘비서’다. 나 몰래, 네 멋대로 돌아다닐 처지가 아니다. 허락맡고 나가든지, 모시고 나가든지 해야할거 아니냐? 그런 무례한 버릇이 어디 있단 말이냐?”

노인심리다. 사실은 같이 나가 구경하고 싶었던 것인데 젊은 것들이 ‘늙은이’라고 일부러 제쳐놓았다는 것이 노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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