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7일 목요일

[범용기 제2권] (83) 캐나다연합교회 예방과 그 후유증 – 캐나다연합교회 해외선교부 연차대회에서

[범용기 제2권] (83) 캐나다연합교회 예방과 그 후유증 – 캐나다연합교회 해외선교부 연차대회에서


때는 1959년 4월이다. 이 회의는 일년에 한번, 4월 하순에 모인다. 선교부 부총무 ‘호니’(Honey) 목사가 주로 내 생활을 돌봐 주었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갈리하 ‘총무’와의 사전 합의 없이 하는 일은 없었다.

해외선교부 연차대회는 모였다. 말하자면 이사회와 같은 모임이었다.

나는 선교부로서의 한국신학대학에 대한 보조금 일만불을 2만불로 증액해 줄 것과, 기장총회의 개척교회를 위한 보조금 1만불도 배로 계정해 줄 것, 그리고 기장총회직영 중고등학교인 청주 세광학원 건축비로 6만불을 게정해 줄 것을 갈리하 총무를 통하여 제청했다.

그리고서는 YMCA숙고에 돌아와 누웠다.

먹고자고 뒹굴며 책을 읽곤 한다. 배에 비게가 낀다.

나는 무료해졌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갈리하’ 총무와 의논했다. 몇 달 후에 열리는 캐나다 연합교회외지 선교부 1959년 연차대외에 참석하고 가야 한다고 한다.

그 모임이 선교부의 예산책정과 사업토의의 실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생활양식을 계속했다.

얼마 후에 갈리하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네가 직접 와서 설명해야 하겠다.” 한다. 나는 곧 갔다.

이사회원은 십여명 되었다. 모두 돈냥이나 있음직한 기업체 사장 또는 중역급이었다.

나는 말했다.

“옛날 한국에 ‘용’(龍)만을 그리려는 유명한 화가가 있었다. ‘용’을 제대로 그리려면 ‘용’을 직접 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밤낮 용 보기를 염원했다.
하루는 용이 그의 화실에 나타났다. 꿈틀거리며 저쪽으로 나간다. 그는 용을 봤다. 그러나 ‘눈’은 보지 못했다. 벌써 머리는 저쪽으로 돌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눈’ 없는 ‘용’을 그렸다.
캐나다 선교부에서 오랜 세월, 한국에 선교하여 많은 신자를 얻었다. 그러나 지도자 양성에 더 큰 성의를 보였어야 할 것이 아니었던가! 물론 미국선교부보다는 ‘선진’이겠지만 그것은 Better요 Best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해방된 한국과 자립해야 할 한국교회는 각 방면에서 지도적 인물의 부족을 느낀다.
지도자는 ‘용’의 눈이다. 눈이 없는, 눈이 먼 거대한 ‘몸’을 생각해 보라. 그 비극이 어떠할 것인가?
‘한신’은 한국교회의 ‘눈’을 자부한다. ‘눈’이 되야 하겠다고 염원한다.
여러분이 한신교사(敎舍)를 마련해 주었다. 그것이 ‘용’의 ‘몸’이라면, 또는 용의 머리라면, 거기에 눈을 그려야 할 단계에 있다. ‘점청’(点靑 )은 ‘finishing touch’다.
우리 다 같이 협력하여 미래역사와 미래의 ‘눈’을 그려봅시다….” 했다.

그리고 “기장총회에도 좀스러운 미봉책보다도 거대한 기초작업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세게적으로 대결된 38선에서 두 진영이 종합된 더 높은 차원의 새 세계 역사가 이루워지도록 공헌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서 나는 YMCA 좁은 침실에 누웠다.

그 이튿날이던가, 갈리하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신에는 네가 만불만 더 책정하라고 했지만 3만불이 허락됐다. 기장총회에도 만불이 더 책정됐다. 그것도 두 곱이다.

속히 회의 장소에 나와서 정식으로 통고받고 우리의 부탁도 들어달라.” 한다.

나는 곧 나갔다. 나는 캐나다 교회가 한국 교회의 진실한 친구와 동지가 돼준 것을 감사했다.

‘갈리하’ 총무는 총회와 선교부 이사회를 대표하여 나에게 아래와 같은 부탁을 전한다.

① 우리 선교부로서는 최선의 성의를 보인 것이며 어려운 용단(勇斷)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정 때문에 한국 교회에서 마치 캐나다 연합교회에는 일년 열두달, 돈이 주렁주렁 열리는 ‘돈나무’라도 있는 것 같이 생각하면 큰일이다. 그런 착각이 없기를 바란다.
② 총회에 나가는 돈은 어떤 특정 사업에 집중적으로 써주기를 바란다. 각 지교회가 골고루 나누워 가진다면 한교회에 몇십불, 몇백불 밖에 배당되지 않을 것이니 흐지부지 자취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어떤 교회나 단체에 집중적으로 투입한다면 그 교회나 기관은 그 돈을 밑천으로 자립 자활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면 후일에 우리가 가 보더라도 한 놀라운 기념탑이 될 것이고 우리도 자랑스러울 것이다.

나는 대답했다. “잘 알았다. 나는 총회장도 총무도 아니니까 책임적인 다짐을 하기 어렵지만, 여러분의 뜻을 성의껏 전달하겠다.”

그 얼마후 세광고등학교 교사건축비 6만불도 허락되었다.

나는 흐뭇했다.

그 당시에는 여선교부와 남선교부가 서로 독립돼 있었다.

여 선교부 총무는 ‘미세스 테일러’라는 ‘여걸’이었다.

하루는 여선교부임원과 지방회장들의 기도회가 있었다. 나에게 설교를 청해왔다.

거기서 동의해야 일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갔다. 10분간 설교를 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우리를 사랑하여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요일 4:10). 사랑은 주는 행위다.
나는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봤다.
미시갠 호수의 몇 억만톤 저장된 물이 내리 흐른다. 갑자기 꺼져 내려앉은 절벽에 부딧쳤다. ‘안되겠다’, ‘도루 가자’가 아니었다. 지반이 내려앉아 낮아진데에 내리 퍼붓는다. 그래서 큰 폭포와 강을 이룬다.
캐나다는 서구 문명의 거대한 저수지다.
문명은 사랑에서 완전해진다. 내가 바라기는 이 바다같이 무겁고 두껍고 고인 사랑의 저수지 물이 나이아가라 폭포같이, 꺼져 내려앉은 어려운 민족과 나라와 백성들에게 용감하게 내리 흘러 생명강이 되고 그 가에 생명나무가 밀림을 이루어 계절에 따라 열매 맺는 축복이 주어지도록 함께 힘써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그런 ‘묵시’적인 은어(隱語)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며칠 후에 테일러 총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를 만나자는 것이었다.

“우리도 3만불을 내겠오. 그러나 여선교부 연차대회는 몇 달 후라아 소집되기 때문에 지금 당장 돈을 드릴 수는 없겠오. 어쨌든, 내가 약속한 것이니 믿어도 좋을 거요!” 했다. 시원스럽고 스케일이 큰 ‘여걸’이라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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