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5일 화요일

[범용기 제2권] (71) 경동교회의 재건 – 슈유리 집

[범용기 제2권] (71) 경동교회의 재건 – 슈유리 집


나는 환도 후에도 신학교육의 부단한 개혁과 기장교회 창설과 육성에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그러나 박정희 구데타가 일단 성공되자 군부의 지령에 따라 퇴직했다.

당장 거처할데가 없었지만 다행이도 수유리 하천부지에 어떤 건축회사에서 숱한 간이주택을 짓고 입주금 얼마를 내면 우선 들어가도록 된데가 있었다. 그래서 그리로 이사했다. 나머지 돈은 달마다 나누어 문다.

학교는 빈손으로 나왔으니 식구 살릴 도리도 없다. 주변성이 없으니 돈이 갈다귀처럼 공중을 날아다닌 대도 그걸 후리질 할 용기가 없다.

집터는 82평이라지만 건평은 14평밖에 안된다. 마당은 비교적 넓은 셈이다.

나는 건너방 좁디좁은 서재, 잡다한 책들의 ‘밀림’ 속에 앉아 있다. 여러 신문, 잡지사에서 글 부탁이 오면 간단한 잡문을 써보낸다. 고료는 톡톡히 보내준다. 약혼식, 결혼식 주례 부탁도 심심찮게 잦다. 의례 택시로 모셔다가 모셔오고, 신혼여행에서 신랑ㆍ신부가 선물들고 찾아와 큰 절하고.

그것도 ‘낙’이라면 ‘낙’이겠다. 첫 애기 나면 작명(作名) 부탁이 온다. 일생 부를 이름이라, 수월찮은 ‘창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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