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5일 화요일

[범용기 제2권] (66) 환도와 재건(1953-1958) - 환도 직후

[범용기 제2권] (66) 환도와 재건(1953-1958) - 환도 직후


환도한 우리는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는 붕괴 직전의 교실들을 임시로 수리하고 개강했다. 밖에 통나무 지주(支柱)를 세워 받쳤다.

기둥들이 서로 엇물려서 좀처럼 뭉개지지 않는다.

새로 학생모집 서한을 각 노회에 보내어 신학 지원자를 추천하라 했다. ‘총회’에서 난리를 일으킨 학생들도 왔다. 주로 졸업반 학생들이다. 나는 무조건 받았다. 그래서 모두 졸업시켰다.

한편 소위 정통주의자들과 미국선교사들의 ‘연합군’은 총반격을 개시했다.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전쟁 윤리를 자랑스레 써 먹는다. 교권쟁취를 위해서는 허위선전, 거짓증거를 서슴치 않는다. 그들이 중세기에 태어났다더라면 나 같은 사람은 벌써 종교재판소에 걸려 분살(焚殺)됐을 것이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들은 나에게 소위 ‘신신학’이란 명패를 붙였다.

미국서 근본주의자들이 한창 극성을 부릴 때, 성서의 역사적 비판에 동의하는 학자들을 ‘신신학’자라 불렀다는 내력을 얻어들은 모양이었다. ① 김재준은 ‘성경은 보통 고전(Classic) 문학’ 가운데 하나일 뿐 거기에 ‘신’의 특별계시가 쓰여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② 김재준은 예수의 탄생설화를 후세의 조작이라고 한다. ③ 김재준은 예수의 기적, 부활, 승천 등을 믿지 않는다. ④ 김재준은 모세 5경을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⑤ 김재준은 성경무오설을 부인한다…. ⑥ 김재준은 선교사를 배척한다. 이런 자기류의 김재준론을 마치 상품 광고지같이 인쇄 산포한다. 뿐만 아니라, 각 지교회와 노회를 순회하면서 김재준은 성경 파괴자고 교회를 문란케하는 자라고 선동한다.

단순한 교인들은 김재준을 ‘마귀’라고 무서워한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내가 1950년 6.25동란 때, ‘도강파’(남하한 피신 목사들을 그렇게 불렀었다)에 섞이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었던 것은 上述한 바와 같거니와 9.28 수복 직후에 당시 총회장 최재화 목사가 우리집 현관문을 두드린다. 나는 반갑게 인사하고 올라오시라고 했다. 그는 현관에 선채로 공손하게 경례한다.

“나는 총회를 대표하여 사과하러 왔습니다. 우리는 김목사가 ‘빨갱이’라고 선전했는데 알고보니 그렇지 않을뿐더러 신앙을 위해 괴롬도 많이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나는 “모두가 하느님 은혜인데 용서고 뭐고가 있습니까? 우리가 피난 갔든 안 갔든 하느님이 살려 주셔서 산 것이고 우리가 살 수 있어서 산 것이 아니잖습니까” 하고 위로했다.

하루는 부산 사는 어떤 개인 신자에게서 편지가 왔다.

전혀 모를 이름이었다.

“저는 하느님께 밤낮없이 간구해 왔습니다. ‘하느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다면 김재준을 하루 속히 불러가 주십시오’하는 것이 기도의 제목이었습니다. 그러다가 6.25가 터져서 목사님들이 모두 부산지방에 피해서 생명을 보전했습니다. 그러나 김재준은 서울에 남았습니다. ‘이제사 하느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시나보다 하고 흐뭇해했습니다. 그런데 또 살아 있다니, 이제는 하느님을 의심하게 됐습니다….”

나는 “사랑스런 신자!”라고 혼자 귀여워 했다. 일본말로 ‘가와이라시이’란 말은 ‘어린애 같이 귀엽다’하는 뜻이다.

그 교회 목사가 강단에서 나를 얼마나 저주했기에 그런 교인이 생겼겠나 싶었다. 그리스도 심장(Heart)을 이해하는 ‘신학’교육이 시급하게 요청된다고 혼자 말했다. 교리 제일주의는 율법주의요 복음이 아니다. 이 말은 율법을 무시한다거나 ‘폐한다’는 뜻이 아니라 복음을 섬기는 율법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남하한 정통주의 목사들은 내게 대해 진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었다고 한다.

“김재준이 거리에 나가 공산당 선전원 노릇하는 것을 봤다.”

“적기를 들고 가두행진하는 것을 봤다….” 말들이 많았다 한다.

설사 살아 있다는 셈 치더라도 ‘부역자’로 처단받을 것은 확실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교수진도 정비됐다. 전경연, 박봉랑, 김정준, 김재준, 최윤관 등이 정교수였다. 김정준이 교무과장이었는데, 직원 변소를 따로 짓고, 거기에는 얻기 어려운 값비싼 사기변기를 장치했다. 이튿날 아침에 나가보면 없다. 또 사다 달아도 금방 없어진다. 그는 멀쩡한 사기변기를 망치로 때려 금이 가게 했다. 떼가는 사람이 없었다.

“난리에는 못난 놈이 살아남는 갑다”하고 나는 혼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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