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0일 수요일

[범용기 제2권] (127) 월남파병(1965.1) - 월남파병

[범용기 제2권] (127) 월남파병(1965.1) - 월남파병


1965년 1월 8일에 박정희는 한국군 2천명을 월남전쟁에 파견했다.

불란서의 골치덩어리를 싱겁게(?) 떠 맡은 미국은 ‘호미난방’(虎尾難放)의 난처한 처지에서 얼마라도 한국군으로 대체시킬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를 ‘삶기’위해 ‘존슨’ 미국대통령은 자기 전용기를 보내어 박대통령을 초청했다.

5월 16일 미국 방문한 ‘박’은 거기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 대가로 우리 청년들이 연달이 명분없는 전장에 피를 쏟게 됐다.

우리나라도 본질적으로 월남과 같은 제3세계인 처지에서 제3세계의 적과 어울려 제3세계를 때린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조롱거리가 아닐 수 없겠다.

이때 윤보선 씨만은 월남 파병을 반대하고 혼자서 데모까지 했다고 들었다.

‘월남파병’은 6ㆍ25 전쟁 때 월남 의용군이 한국전선에서 용감하게 싸웠다고 다들 철군한 다음에도 마감까지 전선을 지키고 있었다는 데 대한 한국으로서의 보답의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 국군은 잔인할 정도로 ‘멸공’에 용감했다고 들었다.

출병과 아울러 민간인이 군속 또는 수송작업, 군수품 ‘용달’ 등등을 위하여 따라갔다. 그 수가 만 단위일 것이다.

그들은 단시일에 한 밑천 잡으려고 눈에 쌍불을 켠다. 그래서 ‘딸라’가 한국에 흘러든다. 독신 젊은이라 남방미인과의 관계, 본국 가정에서 혼자 사는 젊은 부인들의 초조한 기다림, 본의 아닌 유혹 등등 희비극이 겨울바람 같이 창틈으로 스며든다. 가치 기준이 뒤집힌다. 욕심이 부푼다. 불난 집에 불끄러 가서 도둑질 한다는 건 창피하고 비열하다.

징기스칸 ‘무적군대’란 굶주린 이리떼였다 한다. “저 동리를 점령하고 맘대로 강간하고 약탈하고 신나게 살인해라.”

지금의 군대는 세련된 ‘국가의 간성’이라지만 그 심층에는 동질의 비정(비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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