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30일 수요일

[범용기 제2권] (122) 5ㆍ16 군사반란(1961) – 기자들에 대한 탄압

[범용기 제2권] (122) 5ㆍ16 군사반란(1961) – 기자들에 대한 탄압


기자들의 보도망을 졸라맨다. 정부 각 부서 출입기자는 그 부서에서 발표하는 기사 이외에는 아무 것도 쓰지 못한다. 기자들의 ‘특종기사’, 일본말로 ‘독구다네’(特種)는 없다. 지방기사를 못 쓴다. 어떤 사건을 기사화 했을 경우에는 객관적인 증거자료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기자들은 걸핏하면 끌려 가 개 패듯 두들겨 맞는다. ‘부아’가 난다. ‘발산’할 고장은 ‘대포집’, 술집이다. 사내(社內) 편집기자들도 마찬가지다. 기껏 정성들여 쓴 ‘엣세이’가 편집국장 손에서 빠져버린다. 윤전기에 들어가기 바로 전에 CIA 검열관이 현장에서 지워버린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이던 천관우는 비밀리에 준비했던 자기 논설을 CIA 검열통과 직후에 감쪽같이 윤전기에 넣는다. 그런 ‘기습’이 성공하는 일도 없지 않았다.

천관우는 동아일보 전무이사이기도 했다. 몇 번이고 문초를 당했다. 그러나 그도 끈적졌다. 경찰에서는 광고주들을 공갈해서 광고 원(源)을 막았다. 광고는 신문경영의 ‘생명선’이다.

마감판에는 동아일보 사장 고병욱을 연행했다. 천관우를 전무이사 자리에서 축출하라는 지령이었다. 순하디 순한 그도 ‘부아’가 났다.

“아예, 당신들이 다 맡아 하시오!”

“이 자식, 우리가 언제 신문을 하지 말랬나? 어디 맛좀 볼래?”

50이 지난 늙은이가 실컷 두들겨 맞고 겨우 풀려 나왔다. 그는 천관우에게 고충을 호소했다.

그래도 나가란 말은 차마 못한다.

정치깡패가 동원됐다. 천관우가 퇴근할 즈음에는 동아일보 현관 앞에 수십명 악당들이 어깨를 재면서 슬쩍 쳐다본다. 옆구리를 툭 다치며 뒤를 따른다. 어느 밤중의 길가에 시체가 되어 어느 술집 컴컴한 길가에 버려질지 누가 알 것인가? 그런 경우에는 검시도 안한다.

“술 주정꾼이 넘어져 죽었다”로 끝난다.

동아일보에서는 그런 일을 이미 경험했었다.

동아방송에서 방송프로와 방송극 창작으로 이름났던 젊은 작가 ‘조동화’가 밤중에 두들겨 맞고 다방골 술집 앞에 시체같이 버려졌던 사건 말이다. 가족들이 찾아 돌아다니다가 발견해서 동사(凍死) 직전에 살아났지만, 그의 작가 활동은 일시중단될 밖에 없었다. 그는 전영태 목사의 사위다.

결국 천관우도 동아일보를 사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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